시편 78:40~55
78:40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78:41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78:42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78: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징조를, 소안 들에서 그 기사를 나타내사
78:44 저희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저희로 마실수 없게 하시며
78:45 파리 떼를 저희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78:46 저희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시며 저희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78:47 저희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저희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78:48 저희 가축을 우박에, 저희 양떼를 번갯불에 붙이셨으며
78:49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
78:50 그 노를 위하여 치도하사 저희 혼의 사망을 면케 아니하시고 저희 생명을 염병에 붙이셨으며
78: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78:52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78:53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78:54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78:55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 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기억은 과거의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구속이 시작되기도 하고,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그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기억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이라는 현재 속에서 다시 살려내는 생산적 활동이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의 기억을 잊어버렸던 불순종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인도하셨다는 것을 고백한다.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반복된 불순종에도 하나님은 또 도와주시고, 공급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다. 그러나 결국 그 불순종의 세대는 광야에서 죽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끝내 기억하지 않고 망각한 세대는 결국 거기서 멈추었다.
그러나 그 실패로 하나님의 언약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불순종으로 죽었으나,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통해 언약을 이어가셨다.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막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열정은 인간의 불온한 역사에 방해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은 개인과 맺은 약속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모든 결말을 보고 죽은 것이 아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고 역사를 이어오는 구속사 속에 지금도 살아 있는 진행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78편의 시인의 고백은 사실과 틀리지 않다.
‘기억의 신학’이라 일컫는 신학적 흐름이 있다. 기억이 개인과 공동체의 신학과 신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탐구하는 신학이다.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은 과거를 뒤지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준비하는 예언자의 음성으로 준비된다. 은혜 뿐만이 아니다. 고통과 실패의 시간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신앙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리고, 공동체의 책임과 소명을 다시 확인한다. 기억은 상처를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려는 것이다.
어제 출애굽기 설교와 오후 ETC 예배의 에베소서 설교에서 은혜의 기억에 대해서 말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시편을 통해 또 다시 주신 말씀은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한 결을 타고 겹치고 교차할 때가 있는데 그런 때는 어김없이 하나님의 볼륨이 커지는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은 무언가를 기억해내고 써야만 하는 날이다. 은혜가 잊혀지고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다. 은혜 받은 자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냉담해진다. 하나님은 불순종의 시대까지 뛰어넘어 모든 약속을 이루시지만 나의 인생과 나의 신앙은 소중한 것이므로 이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순종의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