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7:1~10
17: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7:2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17:3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17: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17:5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17: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17: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발하고 가지가 퍼졌도다
17: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17:9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로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17:10 볼지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본문은 바벨론과 이집트라는 열강 사이에 낀 이스라엘의 급박한 국제정세를 비유한 계시다. 근동은 이집트가 쇠퇴하고 바벨론이 지배하는 질서로 재편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책임은 무겁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동맹인 이집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명분이나 의리를 생각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백성의 생명이라는 우선순위를 지키지 못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에스겔를 통해서 바벨론을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주셨다. 그것은 누가 우리편인가는 진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시드기야는 최우선으로 백성을 살리는 길을 먼저 찾아야만 했다. 하나님의 뜻은 국제정세 판단과 정치적 분석 위에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 속에서 길러진 분별력을 통해서 들린다. 바벨론을 섬기라고 하신 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한 명의 백성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길이었다.
그때 근동의 시드기야는 땅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또 다른 때, 극동의 반도에서도 그랬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청나라에서 일본 제국으로 질서가 재편될 때마다 수구주의자들은 사대의 관념에 갇혀 있었다. 의리와 전통, 감정과 인맥에 매여 백성들이 더 많이 죽어야만 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불순종이고 패역이다. 백성을 살리는 길이 순종이고 믿음이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생명에 대한 책임과 양심이 없고, 살려야 하는 사명이 없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시드기야가 정치적 판단을 실수해서 망한 것이 아니고, 백성을 살려야하는 양심과 사명에 눈 감았기에 눈알이 뽑힌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생각을 품는 것이고, 현실을 인식하는 토대 위에 양심과 사명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은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