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9
20:1 제 칠년 오월 십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20: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0:3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20:4 인자야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국문 하려하느냐 너는 그들로 그 열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20:5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었노라
20:6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20:7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20:8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
20:9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
이스라엘 장로들이 여호와께 나와서 묻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질문을 거절하신다. 하나님의 거절에 놀랄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으면서 하나님을 찾는 인간에게 놀랄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는 형식이 곧 내용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분노로 멸하시려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신다. 그리고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너희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백성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곧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시편 23편에서도 그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만 나를 구원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만약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분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신다는 것은 곧 그분의 언약과 성품, 신실하심을 끝까지 붙드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거짓되게 하지 않기 위한 필연적 사랑의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