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27~32
20:27 그런즉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열조가 또 내게 범죄하여 나를 욕되게 하였느니라
20:28 내가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였더니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거기서 또 분향하고 전제를 부어 드린지라
20:29 이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하였노라(그것을 오늘날까지 바마라 일컫느니라)
20:30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열조의 풍속을 따라 스스로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좇아 행음하느냐
20:31 너희가 또 너희 아들로 화제를 삼아 예물로 드려 오늘날까지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20:32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열국 족속 같이 되어서 목석을 숭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임없는 배교의 역사다. 조상들이 우상을 좇았듯이 그 후손들도 또다시 산당과 나무 아래에서 제사하고, 스스로 이방인처럼 살려고 했다. 그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을 이탈하는 사람은 많고, 그것은 아담 이후 인간의 본성이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 싫어하고 세상을 쫒아간다.
인간의 역사는 그것을 반복하지만 주목할 것은 인간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언약을 붙드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인처럼 되고 싶어할 때에도, “너희가 그렇게 되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타락과 배신의 관성에도, 하나님의 언약의 중력이 더 강했다. 자기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이 불순종하는 인간의 역사를 수레에 싣고 이끌고 가신 것이다.
신앙은 어쩌면 붙드는 것이 아니라 붙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자꾸만 손을 놓지만, 하나님은 손을 놓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는 끝까지 보호하시고, 어떤 누구도 거기서 빼앗을 수 없다. “이방처럼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곧 “너는 내 것이다”라는 선언이다. 이것이 곧 성도의 견인이다. 여기서 믿음없는 사람들은 예정인가 의지인가라는 끝없는 논쟁을 하지만 그 사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