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8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2: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로 시작한다. 바울은 11장 이전까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 그리고 은혜로 주어진 구원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12장에 들어와서 그 복음적 진리를 기초로 한 성도의 삶의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12장 시작의 “그러므로”는 큰 틀 안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러므로”이후는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예배라는 것이 의식(儀式)적인 집회보다 훨씬 큰 의미를 말한다. 우리의 몸, 즉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가 될 때, 예배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얼마나 많은 예배의 행위를 했는가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 서는 예배의식(意識)이 얼마나 그 사람의 삶의 방식에 내재화되어 있는가이다.
바울은 이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한다. 그 세대는 어떤 세대일까? 로마의 기성세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욕망과 우상에 사로잡힌 인류 보편의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즉, 복음으로 재구성된 사고방식이 필요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며 살아야 한다. 그것에 관심이 없거나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종교에 집착하면서 괴물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바울의 편지는 집단의 의식적 종교를 정조준하고 개인의 추상적 종교에 대해서도 파괴적일만큼 변화를 요구한다. 살아있는 상태로 제단의 제물로 드리라고 했고, 시대의 타성을 거절하라고 했고, 자신의 생각을 깨부수라고 했다. 혁명적인 언어다. 그래서 입으로 외우기는 잘 하지만 몸으로 적용해 본 적은 없는 낮선 말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분명히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누군가는 분명히 자기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함께 일했던 전도사가 아직 젊은 나이에 삶을 놓고 떠났다.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옆에 있는 두 교회를 담임하는 전도사로 부임했다. 사람 한 명, 가방 하나를 그 땅에 내려놓고 나는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그날 후쿠시마의 잿빛 하늘이 슬퍼보였던 것을 기억한다. 이 세대라면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 가서 산 채로 제물로 드려졌다. 믿음이라고 해서 슬픔을 비켜갈 수는 없다. 장례식에 가야할텐데 자식잃은 부모의 슬픔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