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8:24~35
8:24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8:25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8:26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8:27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8: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8: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8:30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8: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8: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8: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8: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8:35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이스라엘은 아이 군을 마지막까지 진멸했다.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리고 모세가 명령한 율법을 돌에 기록하고, 이스라엘 앞에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낭독했다. 여호수아는 그간의 여리고와 아이 성 전투를 지나오면서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은 것 같다. 아이를 점령한 여호수아는 다른 어떤 일보다 삶의 기준인 하나님과 약속을 다시 기억하고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것이 기준이고 그것이 전부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리고와 아이성의 경험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강렬한 것이었다. 믿음으로 승리하기도 했고 자만으로 패배하기도 했지만, 다시 엎드려 회복하기도 했다. 결과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은 이길 때 자만하고, 실패할 때 좌절한다. 그러나 통찰력을 가진 리더 여호수아는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의 차이를 분명하게 찾아냈다. 오늘 본문이 특별하게 부각시키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 이전에 이미 주어졌던 하나님과 약속에 관한 것이다.
여리고의 승리, 아이성의 패배는 신명기에서 이미 약속되고 규정된 말씀이었다. 믿음이 살아서 활동하면, 그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약속도 삶에서 활동하고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신명기의 다짐을 다시 낭독한 것은, 경험과 감정을 기준삼지 않고, 모든 결정과 선택, 삶의 기준을 말씀과 약속으로 돌아가겠다는 절실한 공동체적 고백이었던 것이다.
말씀과의 관계가 신앙이다. 말씀은 이미 있었고 그 말씀을 믿는 신앙과 불신앙의 중간지대는 없다. 에발산이 아니면 그리심산이다. 믿음은 경험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결단되고 고백되는 것이다. 경험은 그 말씀의 진위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무엇을 약속했는지 확인해야 했고, 알아야 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구석구석 모든 것을 낭독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현상이나 결과가 아니라 말씀과 약속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을 이기려면 세상에서 두리번 거리며 하나님을 찾지 말고, 말씀 앞에 앉아 하나님과 언약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