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1:16~23
11: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11:17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에서부터 헤르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으며
11: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는 여러 날이라
11:19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 바 되었으니
11: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11: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11:22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꼐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마침내 정복 전쟁은 끝나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가나안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셨다. 이스라엘은 긴 시간 고생했지만, 전쟁의 주체는 일관되게 하나님이었고 이스라엘이 짊어진 고생은 승패를 책임지는 ‘주체적 고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순종의 고생’이었다. 이스라엘이 모든 책임을 끌어안고 스스로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셨고 백성은 그저 순종했을 뿐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을 이야기로만 읽으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골격은 ‘하나님의 승리’와 ‘이스라엘의 순종’,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언약’이라는 구조다. 하나님의 근거는 약속이었고, 그 약속이 성취되는 절대 조건은 전적인 순종이었다. 이스라엘의 순종이 확인되자 하나님은 압도적 승리를 주셨고 전쟁은 끝났으며, 보상과 안식이 뒤따랐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내 삶의 현실에 겹쳐 보는 일이다. 과연 나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있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이며 은밀한 것이다. 말씀과 자신 사이에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을 리 없다. 그들이 말하는 약속은 대부분 남에게서 들은 것이며, 자신의 언어와 삶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님과의 ‘계약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약속이 있다면 순종이 따라야 한다. 순종은 소극적 추종이 아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적극적 결단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것은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도 믿지 않아야 한다.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 힘으로 도전해 무언가를 이루어내겠다는 노력보다 순종은 어쩌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런 순종은 믿음이 없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약과 순종, 이 두 가지를 확인하지 않고는 여호수아의 승리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읽어본들 남의 이야기,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과 언약이 있는가? 나의 판단을 부정하고,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말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고백할 일이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언약과 순종은 몸 둘 바를 찾지 못할 것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기는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사는 ‘순종의 사람들’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