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2:10~20
22:10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볼 만한 큰 단이었더라
22: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편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편에 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22: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22:13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22:1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방백씩 열 방백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이스라엘 천만 인 중 족속의 두령이라
22:15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22: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
22:17 브올의 죄악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얻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22:18 오늘날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않고자 하느냐 너희가 오늘날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수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를 취할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
22: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 뿐이 아니었느니라
21장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하나도 남김없이 성취되었다고 말하며 끝난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무언가 책임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제 이스라엘이 약속을 지킬 차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비극적인 문제는 상황이 바뀐 뒤 생각이 바뀐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22장의 위기는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였다. 그것은 어떤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해가 만들어낸 문제였다. 소통이 무디어지고 오해가 증폭되면서 공동체 전체가 전쟁 직전까지 몰려간 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잘 해결하면 다양한 위기와 대처 능력의 축적을 통해 공동체를 더 공고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요단 동편 지파가 그들만의 영역에 큰 제단을 쌓는 것을 본 요단 서편 지파들은 사실관계와 의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즉각 분노했다. 왜냐하면 성소는 실로에 있고 예배는 중앙 성소인 실로에서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편 지파들만의 예배 시설을 짓는다는 것은 예배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서편 사람들은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중앙 성소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동편 지파에 대해 집단적 대응을 결의했다. 감정적으로 흥분한 점도 없지 않아 보이지만, 그들의 위기 인식에는 신학적 긴장감이 정당하게 깔려 있었다. 지금의 사안이 브올 사건의 집단적 우상숭배와 아간의 범죄라는 공동체 배신으로 인한 실패와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편 지파들은 제사장 비느하스와 족장들을 보내 동편 지파들을 공식적으로 책망했다. 서편 지파는 공동체 전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너희의 범죄가 어찌 너희만의 문제가 될 수 있느냐”라는 말은,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동편의 문제는 곧 서편의 책임이 된다는 뜻이다. 서편은 동편이 불순한 의도로 제단을 쌓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브올이나 아간 사건과 같이 공동체성을 저해하면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동편 지파의 해명이 나오지 않았다. 서편 지파는 이미 반역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고, 동편 지파는 아직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진짜 위기는 어떤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소통과 입장의 공백 사이에서 커져 가는 오해이다. 사실 확인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석이 앞서고, 양방의 대화보다 일방의 신념이 더 크게 작동하면, 없는 일로도 피를 흘릴 수 있다. 마귀의 효과적인 방법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오해를 사용하면 적개심과 분열의 국면으로 치달아 가게 할 수 있다. 일본어로는 오모이코미(思い込み)라고 한다. 혼자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오해를 키워 가는 것이다. 심하면 망상이 되고, 더 심하면 피해망상이 된다. 생각의 문을 열어 환기하지 않으면 질식하고,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다.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폐쇄적인 공간으로 가지고 들어가 오해의 씨앗에 물을 주면, 내 안에서 마귀가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