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4:25~33
24: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더라
24: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취하여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24: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라 그런즉 너희로 너희 하나님을 배반치 않게 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4: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24: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24:30 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이었더라
24: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24:3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 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24:33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여호수아의 시대는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모세와 여호수아도 자신의 시대를 넘어 그 다음 것까지 만들 수는 없다. 다음 시대는 다음 세대에 의한 것이어야만 한다. 전통도 체제도 무력하다. 시대 안에 자신들의 신앙을 세워가려는 그 세대의 믿음만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기록하고, 기념하고, 기억하라고 말한 뒤 물러났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왠지 여호수아의 슬픔이 비치는 것만 같다. 약속하고 다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왠지 여호수아가 바라보는 곳과 이스라엘에 바라보는 곳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의 죽음을 읽으면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 이후에 믿음직한 다음 리더를 세우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분명히 더 강력한 지도자와 조직을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리더에게 기대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에게 기대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이스라엘은 통제해야 할 집단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주체적인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좌충우돌하다가 하나님에게 왕을 달라고 요구했다. 버리라고 했던 노예근성을 끝내 버리지 못한 것이다.
나는 특별한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목회자와 군대 제식에서나 볼만한 일사불란한 조직성을 가진 교회에서 믿었고 배웠다. 집중력은 대단했고 성과도 좋았다. 순기능이 강력할수록 역기능은 무서웠다. 그 카리스마와 조직이 사라지고 나니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헌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두 발로 서 있지를 못하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같은 것을 경험한 후배가 찾아왔다. 신앙의 혼란을 호소하며 나에게 자기 신앙을 좀 잡아달라고 했다. 지배당하다가 그 지배력이 사라지니 다시 다른 것에게 자기를 지배해 달라고 애원하는 셈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버리지 못했던 노예근성이고, 이스라엘이 가지지 못했던 신앙이고, 누리지 못했던 자유였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이스라엘은 강력한 리더가 이끄는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었다. 각 지파, 각 가정, 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직접 설 수 있는 것이었다. 믿음을 외주화 할 수 없다.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간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종교에 기대려고 하지만, 한 인격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지 않는 한 그것은 때가 되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주체로 서지 않는 한 길을 잃을 것이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이 아닌 무언가에 기대야만 한다는 것, 억울하지 않은가?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지나 다음 시대로 넘어가야 했다. 주체적으로 포스트 여호수아를 이루지 못하면 여호수아 이후 세대는 세상이 만든 시대에 종속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하는 것, 흉내내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맹세한 것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속은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신앙의 기회를 주고 계신다. 그 부르심은 인격적이고 일관적이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부르시고 직접 말씀하신다.
여호수아서를 덮고보니 미묘한 슬픔의 여운이 남는다. 그것은 이어질 사사기의 혼란을 미리 말하려는 복선일지도 모른다. 모세는 모세의 시대를 살았고, 여호수아는 여호수아의 시대를 살았다. 그 다음 시대가 사사기라는 것이 순서일뿐이다.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여호수아의 시대, 그 다음에 와야하는 가장 성경적인 시대는 하나님을 체험한 나의 간증을 가진 나의 시대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