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7장 1-9절
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137: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137: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137:4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137: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137: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137:8 여자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137:9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137편을 쓴 시인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 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아가 썼다는 설이 있지만 저자는 알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살아야 할 유대인이 지금의 이라크,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울고 있는 이유는 신명기에서 그토록 다짐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눈물의 경고를 지켜내지 못하고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유대 왕 시드기야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던 예레미아의 예언을 무시하고 결국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눈이 있어 시대를 보아도 그것을 읽어내지 못했던 왕에 대한 바벨론의 조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서 살며 성전에서 예배했던 고향을 향수하며 바벨론 강가에 앉아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이 들어간 땅에서 겸손하게 모세의 노래를 잊지 않고 불렀다면 바벨론에서 통한의 노래는 부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두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던 악기로 바벨론 사람들을 귀를 즐겁게 하는 오락이 되지 않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70년대에 자메이카 그룹 더 멜로디언즈가 「By the river of Babylon」 이라는 곡을 불렀고 보니엠이 리메이크하면서 당대에 디스코가 대유행을 했습니다. 장발에 나팔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은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고 그 시대의 꼬마들은 어느 코미디언을 따라 「By the river of Babylon」 을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로 불러댔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르던 디스코 음악의 가사는 오늘 본문인 시편 137편의 슬픔과 후회의 노래였습니다. 귀한 것은 잃고 나서 후회합니다. 가정의 행복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 행복의 소중함을 깨닫고 병들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고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 후회는 예루살렘을 향한 사무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