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하며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고 환난이 곧 인내를 낳고 또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상의 4절까지의 내용은 복음으로 인한 신자의 변화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본문 5절은 이것이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에서 성령이라는 말은 여기서 처음 등장합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5:5」
구원받은 자에게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주신 율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전복되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고 또는 율법을 받은 사람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폐쇄적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런 율법에 대한 강박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대체되는데 그 매개가 성령입니다. 율법이 구원의 전제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없는 이가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없이는 믿음이 주어지지 않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은혜를 매개하는 것은 성령이시고 성령은 곧 하나님의 한 위격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통치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지식과 의지와 감정 안에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주어졌습니다. 신비 중에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는 신비입니다. 믿고 구원을 얻는 데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의 소산이 아닙니다. 성령이 없이는 구원에 합당한 믿음의 고백에 이르지 못합니다.
믿음보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성령이 우리 안에 그것을 부어주시는 사역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작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을 끊고 담배를 끊어야 교회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신자에게나 비신자에게나 보다 높은 윤리적 지향을 해야 하는 것인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시작되는 시점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저는 2001년의 여름에 오쿠타마의 산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담배를 끊어졌습니다. 하루 두 갑씩 피워대던 골초였으나 담배 냄새가 역겨워져서 피울 수가 없었으니 담배는 끊은 것이 아니라 끊어진 것입니다. 교회만 나갈 뿐 술은 끊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지만, 그마저 끊어졌습니다.
저에게 오신 성령이 저의 몸 안에서 일으키신 작은 기적입니다. 술배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신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저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저를 만나 주신 때는 「내가 아직 골초 되었을 때」입니다. 저를 만나주신 때는 「내가 아직 술고래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6」 구원을 받아야 하는 때는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