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예레미야 36:1~19
36: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 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36:2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36:3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듯 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
36: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36:5 예레미야가 바룩을 명하여 가로되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은즉
36:6 너는 들어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36:7 그들이 여호와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듯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와 분이 크니라
36: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무릇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기에게 명한대 로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니라
36:9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36:10 바룩이 여호와의 집 윗뜰 곧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의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있는 예레미야의 말을 낭독하여 모든 백성에게 들리니라
36: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36: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방백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방백이 거기 앉았는지라
36:13 미가야가 바룩의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로 그들에게 고하매
36:14 이에 모든 방백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가매
36: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귀에 낭독하매
36: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서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고하리라
36: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그 구전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청컨대 우리에게 이르라
36: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베풀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36:19 이에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감금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임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요시야 왕 때부터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서기관 바룩에게 이것을 기록하게 하고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하여 금식일에 백성들에게 기록된 책을 낭독하라고 합니다. 바룩은 그것을 두루마리 책으로 기록한 후에 목숨을 걸고 낭독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없었지만, 성전에 모인 백성들은 바룩이 낭독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감금된 예레미야를 초월적 방법으로 석방시키거나 탈옥하게 하여 단 위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는 말했고 서기관은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문서는 어디서든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는 인쇄와 매체가 없었으므로 모여서 바룩이 낭독한 것을 들었습니다. 말이 글이 되었고 다시 글을 낭독하여 말을 들었습니다. 말은 공기 중에서 사라지지만 글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시 재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되어야 하고 그것을 보존하여 문자로 재생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되고 음성으로 재생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됩니다.

 

미가야가 왕궁의 방백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방백들은 바룩을 데려와 다시 책을 낭독하라고 하라고 합니다. 이미 재생 가능한 책이 있기 때문에 바룩은 같은 내용을 두 번째 낭독했습니다. 방백들은 두려움을 느꼈고 그 내용을 왕에게 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입으로 말했고 바룩은 그것을 손으로 기록했고 다시 말로 낭독했고 백성들과 방백들은 그것을 귀로 들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이 들리지 않는 곳까지 글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리 있는 말과 논리적인 글은 전달하는 힘이 됩니다. 말과 글이라는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와 글을 쓸 때 중요한 능력은 공감 능력입니다. 듣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말하고 써야 합니다.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말하는 것과 쓰는 것과 읽는 것과 듣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도 언어입니다. 들어야 하고 읽어야 하고 써야 하고 말해야 합니다.

 

바룩은 선지자가 아니고 서기관이었습니다. 그 바룩이 목숨을 걸고 예언의 말씀을 낭독할 수 있었던 힘은 그것을 썼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쓰고 나면 이해와 공감은 배가되기 때문입니다. 파편처럼 널려있는 정보의 조각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고 생각의 질서를 만들어 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됩니다. 묵상하면 조각들이 떠오르지만, 그것을 일기로 쓰고 묵상의 글쓰기 시작할 때 구슬이 꿰어지듯 이해가 통하게 됩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리된 글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합니다. 그것이 쓰는 것의 힘입니다.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습니다. 듣고 읽고 생각한 것을 글로 정리된 후에 그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하거나 가르치고 나면 지식은 그제서야 자기의 것이 됩니다. 선교의 활동에는 이것이 순환합니다. 내가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내가 말해야 누군가가 들을 수 있습니다. 써야지 알 수 있고 쓴 것을 읽는 사람이 또 알게 됩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은 원리, 선교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선교사이고 교육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교사입니다. 복음을 말하고 쓰고 전하는 사람이 복음을 가장 깊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말하는 것과 쓰는 것에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면 들을 때에도 공감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장 소홀히 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위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기록한 것인가를 예의 주시하면서 읽고 들어야 합니다. 듣기는 궁극적으로 음성정보를 듣는 것이 아니고 그 상황과 언어를 서로 편집하는 능력입니다.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문맥과 상황 안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핵심을 찾아냅니다. 문장과 언어에 실수가 있어도 문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분별합니다. 읽고 듣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하고 말하는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 선교적 소통을 넓혀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