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태 8장 14~22
8: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8: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8: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8: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우리 교회 주변에 있는 「세이로카 국제병원은 聖路加国際病院(St. Luke’s International Hospital)」 은 동경 츠키지의 외국인거류지에 선교사에 의해서 지어진 최초의 근대식 병원입니다. 누가복음을 쓴 누가의 원래 직업이 의사였기 때문에 미국 성공회가 병원 이름을 누가라고 지은 것 같습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병원도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알렌이 세운 「광혜원(廣惠院)」은 「은혜를 널리 베푼다」 는 뜻입니다. 광혜원은 다시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그것은 『논어』의 「박시제중(博施濟衆)」에서 나온 말입니다. 「널리 베풀어 사람을 구제한다」 는 뜻입니다. 이것이 연세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입니다.

 

선교사들은 병원을 지어 아픈 사람을 고치고 학교를 지어 글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곧 질병과 무지에서 해방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보다 병원과 학교를 먼저 지었습니다. 교회가 이기적인 이익집단이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일 수 없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조건 없이 질병과 고통과 가난에서 해방하고 무지와 오해에서부터 선도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어놓았습니다. 섬기고 고치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하고 선교하기 위해서 자신의 젊음과 재산을 내어놓았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았습니다.

 

지난주 주일학교 설교에서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영국 웨일즈에서 중국 선교사로 간 토마스는 아내가 죽는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선교지에서 홀로 된 토마스는 조선에서 선교할 것을 결심하고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들어왔지만, 당시 쇄국하고 있던 조선은 토마스를 죽였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군인에게 그가 전해준 요한복음 쪽성경이 어느집 방의 도배지가 되었고 그 방에 묵은 사람이 말씀을 읽었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집이 한국 최초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중국선교의 허드슨 테일러의 사역에 필적하는 주요한 인물이 브란손이라는 선교사입니다. 19세기 후반 근대복음주의 운동과 무디에 의한 영적 부흥 이후에 브란손은 많은 청년들을 중국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선교에 헌신된 청년을 중국으로 보내던 중 일부를 중국이 아닌 일본으로 보냈고 열아홉 살 여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청년 선교사들이 요코하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산간벽지만을 골라 다니며 가난한 곳을 선교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속한 일본동맹기독교단의 시작입니다.

 

브란손이 중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선교하던 의사 선교사 하디가 경험 많은 목사 선교사인 브란손에서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다. 원산에 온 브란손은 하디에게 「사경회(성경을 읽는 모임)」 를 인도하도록 가르쳐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곳에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원산 부흥은 평양 대부흥으로 번져갔습니다. 일본동맹기독교단과 조선의 평양 대부흥의 역사는 브란손이라는 선교사로 인연이 닿아있습니다.

 

그들이 의사이건 목사이건 학자이건 그리고 그들이 간 곳이 중국이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그들은 고향과 부모와 직업를 두고 떠나 왔고 선교지에서 가족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당했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가면 아기 무덤으로만 하나의 동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위로를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위로는 선교사의 위로가 아니고 선교사를 통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위로입니다.

 

본문에 제자 중에 하나가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십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부친이 돌아가셨으니 장례식을 치르고 오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에 대한 봉양의 의무를 다하고 오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성경은 동양사상 이상으로 부모공경을 강조합니다. 그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부르심 앞에 개인과 가족의 현실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면 어떤 선교사도 일본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조선에도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선교의 열매는 오직 헌신을 먹고 자랍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22」

https://www.youtube.com/watch?v=W3hsaxdnw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