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태 10장 34~42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좀 자세하게 나옵니다. 누가복음에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49」로 시작해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로 이어집니다.「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3」가족간의 불화와 분쟁을 위해 오셨다는 말은 적지 않게 당황스럽게 합니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과 그것을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일에는 관계상의 충돌을 낳습니다. 그 고백의 진위가 순전할수록 반대와 갈등은 심각합니다. 누가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 대해서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마태는 그 과장법적 표현을 정리하여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가족 중심적 사고에서 본다면 어떻게 이해해도 곤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족 공동체를 위해서 이익 공동체에 참가하여 경제활동을 합니다. 가족에 대해서는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헌신합니다. 예수님이 가족을 미워하라는 말에 실망하는 사람이 있지만 가족 이기주의의 단면을 잘라보면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이기적 형태의 사랑의 이유로 자기를 키워준 부모와 형제와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지 말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 전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가족의 사랑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중한 가족도 우상화되고 나면 그 시야가 좁아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상화된 가족 이기주의는 가족에 대한 참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편협하지 않아서 하나님 사랑 안에서 가족은 지금보다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40절 이하로 이어지는 말씀은 그런 각오와 헌신으로 전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41」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42」 예수님은 모든 이이게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선교에 헌신한 사람을 공동체가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 이기주의로 흐르기 쉬운 가족 공동체의 집합은 선교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찬양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1_Jy24vbn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