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태 27장 1~10
27: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7: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27: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27: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27: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27: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27: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27: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베드로의 이야기와 유다의 이야기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나란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마태의 편집상의 의도가 이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후회는 소극적인 것이어서 눈물을 흘릴 뿐 의지적 결단이나 돌이킴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두려워서 어떤 의지적 선언도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유다의 경우는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팔았지만, 또한 의지적으로 돈을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 은 30 세겔 돌려주려 했으나 대제사장은 받지 않았고 유다는 그것을 성전에 던져넣고 스스로 죽었으니 모든 것이 일방적입니다. 살려고 하는 회개가 아니고 죽으려고 하는 자학이고 포기였습니다.

 

은 30 세겔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이라는 의미와 지은 죄를 용서받을 복음을 거부한 돈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배신한 베드로는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어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지만, 유다는 자신을 포기했습니다. 베드로는 후회 속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했지만, 유다는 마지막까지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죄를 씻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은 30 세겔로 예수님을 팔고 다시 은 30 세겔로 복음을 대신했습니다. 은 30 세겔이 예수님의 가치가 될 수 없듯이 돌려준 은 30 세겔에 속죄의 가치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가장 나쁜 죄는 실수하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제한하고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LbCHuP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