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출애굽기 10장 21~29
10: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10: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10:23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10:25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10:26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10: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고
10:28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10:29 모세가 가로되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아홉 번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입니다. 3일간 어두워졌습니다. 물리적으로 어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둠이 생긴 것이 아니고 빛이 사라진 것입니다. 빛이 없는 것이 어둠입니다.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붓는다고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기면 그것이 저주입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 시편 12편을 읽었습니다. 다윗은 왜 세상에 악과 부조리가 있느냐고 고통스럽게 하나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악과 부조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절망이 찾아온 것이 아니고 소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미움이 생긴 것이 아니고 사랑이 사라진 것입니다.

 

책을 통해 많이 배웠던 이재철 목사님과 이어령 선생님의 대담 중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문학적 상상이 근사하여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지음을 받은 첫날 밤이 되었을 때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 것인가는 상상입니다.

 

완벽한 흑암이었을 것입니다. 아담은 불안과 두려움을 밤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어이 태양은 떠올랐을 것이고 아담이 아침이라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담의 종교는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암에 걸린 선생님은 자신의 종교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죽음이라는 어둠을 만날 때 살아있는 존재는 빛을 소망하게 됩니다. 조명받는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조명되지 않으면 존재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존재도 삶의 의미도 역할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이 빛입니다. 해가 떠올라야 하루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3」 그때 흑암과 혼돈은 사라졌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하신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집트에 흑암이 있게 하라하신 말씀은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가려지는 것 그것이 곧 재앙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LxlEDEUY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