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출애굽기 16장 11~20
16: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6: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6: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16: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것이 있는지라
16: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16:17 이스라엘 자손이 그 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16: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16: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만나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식량이었습니다. 만나를 주실 때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16장 4절에서 하나님이 만나를 주실 때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 전날에만 이틀 치 분량을 거두게 하신 것은 안식일 준수를 위한 것이고 가족의 수 대로만 취하고 비축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욕망과 경쟁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공동체 형성을 위한 것입니다.

 

경제적 기본권이 갖추어지지 않은 생활은 불안할 것이고 과도한 경쟁은 삶과 공동체를 피폐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경제적인 기본권이 주어졌다는 것은 선진적 복지 사회입니다. 그렇다고 만나를 먹는 것이 결코 무위도식은 아닙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만나를 채집하는 노동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없을 만큼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사회 전체에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정된 예배를 위해서 안정된 노동과 분배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나는 이웃과 함께 평화롭게 하나님이 주신 식량을 먹으며 예배를 준비하고 사모할 수 있는 기본소득이 되었습니다.

 

경쟁을 통해서 발전해 나간다는 말도 맞는 말이고 불안하기 때문에 더욱 일한다는 말도 맞고 열심과 성실과 능력에 따라 보상에 차등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분명 일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속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근본된 사명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입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해야 하는 것은 인류의 타락 이후에 주어진 벌입니다. 그 전에 아담은 동산에서 허락된 실과를 먹으며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우리는 피폐할 대로 피폐한 정신의 시대, 지친 경쟁의 시대, 끝없는 탐욕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소박한 것에 자족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만히 머물러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묵상할 수 있는 시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의 가치가 경제적 부가가치에 밀려나서는 안됩니다. 비록 산해진미가 아니지만 만나가 내려 불안하지 않는 삶, 그래서 싸우지 않고 서로 배려할 수 있는 삶, 그래서 평강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삶, 우리가 지금 여기서도 추구해야 하는 것도 그런 공생을 위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B3w7mjRK6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