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9편 11~20
9:11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9: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9:13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9: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9:15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9: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셀라)
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9: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 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9: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
9: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인줄 알게 하소서(셀라)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사람에게 합당하고 차별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공정이나 평등의 이름으로 개인의 노력과 성취가 폄훼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성취를 순수하게 자신의 노력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오해입니다. 부한 사람은 열심히 일했겠지만 한편 시대라는 은혜 위에서 혜택을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스스로 시대를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 이전에는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잠들면서 일했어도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없는 절대적 빈곤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가난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상에는 12억의 인구가 매일의 끼니를 걱정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 노동하지만 먹을 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른바 선진국, 부자 나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있지만 그것은 항상 한 곳에 몰려 있습니다. 빈곤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이동하며 여전히 존재합니다.

 

부가 개인의 노력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사회적 도움과 시대의 혜택인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가난의 책임 또한 개인의 무능과 나태에 그 전적 원인을 둘 수는 없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주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사회에 가마니 채로 주십니다. 그것이 선용 되어 모든 이에게 혜택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요구하시고 사랑이 없으면 분배는 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이 땅에서 불균형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계층 이동의 통로는 좁아지고 기회는 박탈됩니다. 경제적 빈곤 계층은 탈출하기 어려워지고 경제적 기득계층은 탐욕의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배임 횡령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빵을 주는 것도 혜택이고 일할 기회를 주는 것도 혜택이며 고도의 지적사회에서 동등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혜택입니다. 공부는 항상 잘하는 사람만 잘합니다. 성적이 먹을 것의 권리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각자의 재능과 은사가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또한 사회적 혜택입니다. 하나님은 사회에 그것을 위임하셨고 우리에게는 그 책임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axFZPGp1H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