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5장 1~9
35:1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35: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35: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35: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35: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35:6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35:7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35:8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35:9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엄혹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다 보면 누구나 버거움을 느낍니다. 있는 사람은 있는 것 위에서 버겁고 없는 사람은 없는 것 위에서 버겁습니다. 그 자리에서 멈추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더 앞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힘에 부칩니다. 쉬고 싶지만 일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행복과 고통이 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남들이 우리보다 잘살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쉬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눈감고 일하고 눈 뜨고 잠이 듭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일까? 답은 없지만 제일 못난 답부터 추려보면 생존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돼지가 사는 목적입니다. 행복과 고통이 상대적이듯 삶에 목적과 의미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어가면 수단과 도구 정도야 주어질 겁니다. 원래 그것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고 하나님이니까요.
노예의 목적은 생존이고 생존하기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지배당하고 있으니까요.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질문하면 채찍을 때립니다. 쉬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게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출애굽은 거기서 이끌어 내어 주신 은혜입니다. 쉬지 못하는 인간을 쉬게 한 것이 출애굽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노예 된 인간에게 광야의 흙내음은 향기롭지 않았겠습니까?
재작년 이맘때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저는 하나님께 한 주간의 강제 휴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배를 움켜잡고 집으로 기어 가서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입원했습니다.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는 2주간 입원하라고 했지만 한주간만 입원하고 서둘러 퇴원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며 퇴원했지만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꼴값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일상의 노예였습니다.
가만히 혼자 한 곡의 노래를 끝까지 들은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바빠서 노래 한 곡을 다 듣지 못합니다. 시집을 펼쳐 읽은 적이 있기는 합니까? 일하는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커피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식어버린 커피와 마주하곤 합니다. 식어버린 커피는 외면해버린 휴식입니다. 커피는 노트북 옆에 두지 말고 티테이블 위에 두겠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실 때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만 마시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