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사사기 15장 14~20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5: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5: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5: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5: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15: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여호수아 14장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도전한 갈렙이 유다지파였고 그 도전정신이 믿음이 되어 헤브론을 점렴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에 눌려 살던 유다는 자기 동족 삼손을 잡아 블레셋에 바쳐야 하는 비겁하고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힘 있는 것에 저항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연히 진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패배 의식과 피해 의식 안에서 자존감을 잃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삼손은 천방지축이라도 블레셋과 싸우고 있습니다. 현실 안에서 믿음의 가능성을 보지 말고 믿음으로 현실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삼손이 힘이 없어서 누구에게 맞거나 끌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유다의 손에 끌려갑니다. 삼손은 적어도 동족과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삼손을 끌고 블레셋에 넘기기 위해 레히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끌려오는 삼손을 보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삼손을 죽여 복수할 수 있다는 기쁨의 탄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여전히 삼손에게 머물러 계십니다. 삼손이 밧줄을 끊고 나귀의 턱뼈를 주워 그것으로 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동네 이름이 레히이고 턱뼈가 히브리어로 레히입니다. 레히에서 죽어야 했던 삼손이 레히에서 레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삼손의 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뿐입니다.

 

그러고도 삼손은 자기에게 도취되어 있습니다.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6절 삼손은 내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손은 극심한 목마름을 느꼈고 그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높을 때는 내 이름, 괴로울 때는 하나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레히에서 샘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삼손은 그 물을 마시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문제투성이지만 부르짖을 수만 있어도 살겠습니다. 패배 의식에 젖어 기도도 하지 못하는 유다보다는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g9aU0EbU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