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욥기 15장 1~16
15: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15: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
15:3 어찌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15: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15: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15:6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
15:7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15:8 하나님의 모의를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15:9 너의 아는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의 깨달은것이 무엇이기로 우리에게는 없겠느냐
15:10 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15:11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
15:12 어찌하여 네가 마음에 끌리며 네 눈을 번쩍여
15:13 네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고 네 입으로 말들을 내느냐
15:14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15:15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 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5:16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지식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단 성경이 두꺼워서만은 아닙니다. 신앙의 경험을 통해서 지식과 현실이 일치되지 않고 질문해도 답이 주어지지 않고 여전히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도 몇 가지 모순과 상충하고 나면 곧 포기해 버립니다. 하나님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답이 주어지기 보다 질문이 더 많이 주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과 현실은 서로 구분할 것이 아니지만 믿음에 있어서도 현실에 있어서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에 늘 시달렸습니다. 의지박약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어떤 일에든지 거슬러 올라가면 자책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내가 믿음이 없어서 당하는 일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잘하는 때에만 믿음이 성공하는 것이라면 믿음은 존재하는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얼마나 더 도덕적이어야 하고 얼마나 더 열심을 가져야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 질문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누군가가 종교에 대한 답을 준다고 하면 귀가 솔깃하여 속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으니까 무턱대고 믿자는 말이 아닙니다. 모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는 믿는 것입니다.

 

불행이 겹치고 기어이 죽음이 찾아온다고 하여도 믿음은 그 상황 너머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의 믿음의 모양을 더 성취해가는 것이 아니고 지식을 더 쌓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믿어야 합니다. 때론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비록 게으르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이끝고 가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이유를 다 알 수 없어서 혼란과 좌절에 빠집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요구하고 있는 종교적 이상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 욥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종교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고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지금도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음악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KJ0Ypseiu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