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1장 24~40
31:24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더러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
31:25 언제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던가
31:26 언제 태양의 빛남과 달의 명랑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고
31:27 내 마음이 가만히 유혹되어 손에 입맞추었던가
31:28 이 역시 재판장에게 벌 받을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니라
31:29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였으며 그의 재앙 만남을 인하여 기운을 뽐내었던가
31:30 실상은 내가 그의 죽기를 구하는 말로 저주하여 내 입으로 범죄케 아니하였느니라
31:31 내 장막 사람의 말이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었는가
31:32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
31:33 내가 언제 큰 무리를 두려워하며 족속의 멸시를 무서워함으로 잠잠하고 문에 나가지 아니하여 타인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
31:34 상동
31:35 누구든지 나의 변백을 들을지니라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원하노라 내 대적의 기록한 소송장이 내게 있으면
31:36 내가 어깨에 메기도 하고 면류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며
31: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고하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1:38 언제 내 토지가 부르짖어 나를 책망하며 그 이랑이 일시에 울었던가
31:39 언제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산물을 먹고 그 소유주로 생명을 잃게 하였던가
31:40 그리하였으면 밀 대신에 찔레가 나고 보리 대신에 잡풀이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욥은 부자였지만 자신의 재산의 많음을 기뻐하지 않았고 누군가를 저주한 적도 없고 타인의 실패와 죽음을 기뻐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곤란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스스로 비겁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같이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욥이 자기 마음과 약속한 법입니다. 욥은 왜 이 어려운 것들을 약속하고 지켰던 것일까요?
율법적 강령을 반드시 지키내겠다는 준수 의무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욥은 타인을 공감하는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욥의 행동은 욥의 마음의 원리가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리가 공감입니다. 욥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욥은 공감이라는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어야 그것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켜야 하니까 지키는 것이 아니고 공감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공감이 없이는 회초리를 친다고 해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공감이 없으면 선을 추구하는 것도 억압이고 강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정서적 공감 능력」이라고 하고 타인이 처한 상황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이 동반하는 것을 「인지적 공감 능력」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불쌍하다고 혀를 차는 것은 정서적 공감이지만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지적 공감입니다. 욥은 인지적 공감을 했기에 실천적 행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감 없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적인 연대와 협력을 이루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욥의 최후변론은 어쩌면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개체화되고 고립되어가는 세상을 향한 호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세 친구들과 비교되면서 고난받는 공감이 더 안타까워 보입니다. 욥을 공감하지 못하면 욥기를 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공감에 손을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도 아픈 곳과 약한 곳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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