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장 1~7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에베소에 있던 디모데에게 서서 보냈던 바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를 사도 바울의 유서와 같은 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쓴 13통의 서신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편지이고 가장 인간적이면서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만났던 소년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자기 동네에서 전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죽을 만큼 맞고 동네 밖으로 버려지던 것을 두 눈으로 보았고 상처투성이 몸으로 다시 일어나 설교하던 모습도 보았습니다.
믿음이 믿음을 낳고 열정이 열정을 낳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자지간입니다. 2차 전도 여행 때 사도 바울은 다시 루스드라를 방문하는데 거기서 디모데를 선교사로 픽업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함께 에개해를 건너 마케도니아로 넘어갔습니다. 파란만장했던 바울의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고 바울이 갇히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은 사도바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디모데는 언제나 신뢰하는 아들 같은 동역자였습니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디모데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쉬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디모데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바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고향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서 신앙을 배우고 자랐고 바울을 따라 선교사로 떠난 후 어머니와 외할머니 또한 밤낮 쉬지 않고 디모데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로 디모데가 울었는지 알 수 없으나 바울은 디모데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하감옥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던 때에도 울고 있는 디모데와 위기의 시대를 걸어가는 교회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울고 있는 디모데도, 갇혀있는 바울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무언가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통해서 일하신 하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에게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계획과 능력으로 선교의 일을 이루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에게 은사와 기회를 주시고 일하게 하셨던 것을 말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은사는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일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디모데에게 주신 은사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 즉 겸손으로 하되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붙일듯이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디모데의 눈물과 디모데의 은사는 둘 다 교회와 관련된 것일 겁니다. 은사가 없으면 일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안 좋아도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은 시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은사는 주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됩니다. 선교는 인간의 실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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