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누가복음 3장 1~6
3: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3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 가족이 베들레헴으로 갔고 예수님이 거기서 태어나신 것은 유대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호적 등록을 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황제가 가이사 아구스도 즉 아우구스투스이고 헬라이름으로는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로마의 황제는 디베료 가이사 즉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의 의붓아들입니다.

 

어드벤트를 지나면서 설교에서 신구약중간기 역사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마카비 이후 유대는 내부 정권 다툼으로 다시 외세를 팔레스타인으로 불러오게 되어 당시 맹주인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에돔의 헤롯이 로마에게 정치적 로비를 하여 유대의 지배권을 받게 되고 유대는 졸지에 로마 황제와 에돔의 헤롯왕의 이중지배체제하에 놓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아우구스투스 즉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였고 유대를 지배하고 있던 왕은 에돔의 헤롯대왕이었으나 오늘 본문은 시간이 흘러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황제가 되어 있었고 헤롯대왕의 아들들이 각각의 영토를 나누어서 분봉왕으로 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로마는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했지만 동시에 중앙정부에서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그 총독이 본디오 빌라도였습니다. 총독과 유대 왕은 상하관계가 아니었고 서로 견제하면서 존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판 때 헤롯은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게 사건을 보내려고 했고 본디오 빌라도 총독은 헤롯왕에게 사건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일관된 체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로마정부와 헤롯왕은 유대의 종교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이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는데 대제사장은 로마 총독이 임명할 수 있고 또 해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지배 권력에 기생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장인과 사이의 관계입니다. 장인 안나스와 사위 가야바가 그것을 나누어 종교 권력을 쥐고 있을 때입니다.

 

누가가 이러한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시대적 상황을 소개한 후에 세례 요한을 등장시키는 것은 모든 것이 불의로 가득찬 세상 위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을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서 등장시킵니다.

3:4…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영역에서 폭력과 억압이 있고 부정과 불공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마치 예수님의 속옷을 찢어 나누던 로마군병들처럼 약한 유다를 찢어서 나누어 가졌고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야 할 예배마저도 불의한 제사장 권력에 의해 부패되었고 오히려 자기 동족에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요한이 등장했고 요한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그것은 높은 곳을 깎아서 낮은 곳을 매우는 것이었습니다. 굽은 것을 곧게 하고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기다린다라는 것은 불의하게 높아진 높은 산을 절토(切土,Cutting)하여 그것을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곳에 쏟아부어 성토(盛土, Banking)하여 평탄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한 요한의 회개를 촉구하는 외침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삶과 살고 있는 시대의 절토와 성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ZDwIqQZxP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