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분기 결산
자동차의 연료가 소모되면 가솔린을 주유하고 휴대폰의 배터리가 소모되면 충전한다.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면 충전하고 싶은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 년의 4분의 1, 1/4분기가 지나간다. 일 년의 배터리 중에 25%를 이미 사용한 것이다. 배터리 잔량은 75%, 충전의 습관대로 카렌더에 충전기를 갖다 대 보아도 시간은 충전되지 않는다. 계절은 언제나 마음보다 빠르다. 마음은 아직 겨울인데 3월마저도 과거가…
자동차의 연료가 소모되면 가솔린을 주유하고 휴대폰의 배터리가 소모되면 충전한다.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면 충전하고 싶은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 년의 4분의 1, 1/4분기가 지나간다. 일 년의 배터리 중에 25%를 이미 사용한 것이다. 배터리 잔량은 75%, 충전의 습관대로 카렌더에 충전기를 갖다 대 보아도 시간은 충전되지 않는다. 계절은 언제나 마음보다 빠르다. 마음은 아직 겨울인데 3월마저도 과거가…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하나님을 믿었을까?’ 믿음의 세계에서는 비웃음을 당할만한 말이다. 회심에 관해서는 언제나 ‘나는 왜 하나님을 믿었을까’ 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가’ , 즉 믿음은 어떠한 경위로 주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운 대답일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는데 이래저래 해서 하나님을…
이곳에 묵상이나 작은 생각들을 써 볼 생각입니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에 좀 더 성실하고자 합니다. 방 이름은 칼럼이라고 되어있지만 「새내기 목사의 빈들」이라는 별명을 붙여봅니다. 새내기 목사라고 한 것은 2019년 3월에 목사안수를 받은 신참 목사이기 때문이고, 빈들이라고 한 것은 「생각」,「통찰」,「분별」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빈」이라는 글자를 빌려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풋내기 목사의 어쭙잖은 생각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봄이 왔는가 하다가도 어김없이 꽃샘추위라는 것이 몰려온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날씨가 심술을 부려 꽃잎을 얼려버린다. 한 달도 전의 일이지만 동경에 이상고온이 이어질 때 동네 가로수의 목련이 활짝 꽃을 피우기도 했다. ‘저런, 아직도 날씨가 많이 추워야 진짜 봄이 올 텐데 저 꽃들을 어쩌나.’ 걱정을 하며 그 길을 지나갔다. 제때 피어난 꽃잎들이라도 날씨의 변덕 앞에서…
牛とライオンの愛の物語 ー姜旲憬神学生ー ライオンと牛がいました 二人は熱く愛し合っていました 互いに最善を尽くすことを約束しました ライオンは牛のために肉をあげ 牛はライオンのために草をあげました 牛はライオンを愛していたので 食べられない肉を我慢して食べ ライオンは牛を愛していたので 食べられない草を我慢して食べました 最初は何とか食べましたが 結局二人は我慢の限界に達して別れてしまいました 別れ際に二人はこう言いました 牛が言いました「私は最善を尽くした」 ライオンも言いました「私だって最善を尽くした」 (パク ヘジョ) この話は寓話です。当然本当の話ではありません。人間関係において自分の固定観念を相手に押し付けてしまうことがあってはいけないと言っています。しかしなぜライオンと牛はお互い分かり合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相手を心から愛し、最善を尽くした二人は、相手に愛ではなく、毒を与えてしまいました。私は思います。この二人は相手のことを見てい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自分の愛、自分の最善ばかりに気を取られ、一番大切な相手のことを見失っ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ただ実際に私たちも神様との関係において、このような過ちを犯していないでしょうか。神様に私の最善のものを献げていると思っても、実際はライオンに草をあげ、牛に肉をあげるようなことを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もう一度神様のことを見てみましょう。神様が好きなもの、神様が嫌いなもの、神様が何を望んでおられるのかを見てみましょう。私たちは神様を見続けなければ、この牛とライオンのように、相手に毒を与えてしまう愚かな存在なのですから。カインは「私は最善を尽くしました」と神様に顔を伏せましたが、アベルは神様に受け入れられるささげものを献げました。私たちは今どちらに生きているのか自問自答して、神様を見上げるとともに私たちの信仰をもう一度見つめ直す必要があると思うのです。その時に初めて私たちは謙遜な者へと変えられます。「私は最善を尽くしました」と言えるのは、実は人間ではなく、神様だけなのです。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 ー강대경 신학생ー 사자와 소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하였죠. 사자는 소를 위해서 ‘고기’를 주었고 소는 사자를 위해서 ‘풀’을 주었습니다. 소는 사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못 먹는 고기’를 고통을 이겨내며…
14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때 프랑스 칼레라는 곳은 영국군에게 패배했고 시민 전체가 학살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영국 왕은 이 도시 안에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여섯 명만 있다면 시민을 학살하는 것은 철회하겠다고 했다.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생 피에르가 목에 밧줄을 두르고 나왔다. 그다음에 칼레 시장이 나왔고 속속 칼레사회 리더들이…
숲속에서 심한 갈증에 시달리던 질은 무섭고 장엄한 아슬란과 마주졌다.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찾아갔지만, 시냇물 앞에는 무서운 사자 아슬란이 있었던 것이다. 아슬란은 질에게 “목이 마르면 와서 마셔라.”고 말했다. 질은 갈증이 심했지만 사자가 너무 무서웠다. 그녀는 사자의 거룩함을 두려워하여 “도저히 가까이 다가가 물을 마실 수가 없어요.”라고 더듬거렸다. 그러자 사자는 “그러면 갈증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순절 동안에도 우리의 작은 믿음은 이른 봄바람에 흔들리듯 자주 흔들린다. 그런데 제자들이야말로 이 사순절을 참 많이 흔들리며 보냈다. 물론 당시에는 사순절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주가 고난받기 시작하면서 부활하실 때까지 아니 부활하신 다음에도 제자들에게 평안이라는 것은 없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패배자였으며 또한 도망자였다. 유다의 죽음과 예수님의 연쇄적인 죽음의 공포, 그리고 남겨진 상실감 속에 빠르게 현실주의로 돌아가고 있었다. 현실주의자에게…
イ・ジョンウ 神父 著「しろかね夕焼けの池の波」中 私は今ここで四旬節の断食や禁肉について話すつもりはない。一食を断食する程度のこと、肉を食べないこと、あるいはそれを数え間違えたことで常習的に懺悔すること、そんなことに真の悔い改めと償いがあるとは言いたくない。批判を断食し、賞賛の晩餐を楽しみなさい。短気を断食し、柔和の晩餐を楽しみなさい。嫉妬を断食し、愛の晩餐を楽しみなさい。偽りを断食し、真実の晩餐を…自分のための言い訳を断食し、責任の晩餐を…不満を断食し、感謝の晩餐を…わがままを断食し、奉仕の晩餐を…恐れを断食し、信仰の晩餐を楽しみなさい。私たちはこれらを長い間忘れたまま生きてきた。食べ物の量や祈りの時間、献金の大きさではなく、真実な生き方、愛の真価が大切なのではないか。もうこれ以上食べるものや持っているものにばかり焦点を合てたり、それらを問題にしてはならない。今日、私たちの信仰の現実において、非人間的なこと、非人格的なことを先に断食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ような省察と自覚から根本的な精神の改革が求められる。いわゆる発想の転換とともに、信仰の正しい意味と中身を取り戻す四旬節になることを願う。 イ・ジョンウ神父(詩人)著「しろかね夕焼けの池の波」中 ユダが腐敗していたヨアシュ王の時代、預言者ヨエルは、悔い改めの断食を命じた。しかし、ヨエルは形式主義を警戒し、衣を破るパフォーマンスは止め、心を引き裂く悔い改めを促した。 ーヨエル2:12,13「しかし、今でも──主のことば── 心のすべてをもって、断食と涙と嘆きをもって、わたしのもとに帰れ。」衣ではなく、あなたがたの心を引き裂け。 あなたがたの神、主に立ち返れ。ー 衣を引き裂くことが間違っているのではなく、心を引き裂かないことが間違っている。断食することが問題ではなく、悲しみの心のない形だけの乾いた心が問題であるという。四旬節に各々が定めた節制と禁欲を実践し、十字架を黙想する敬虔というのはいかに美しいことだろうか。ところが、真の悔い改めのために引き裂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ころ」というのは、どこにあるのだろうか。心がどこにあるのか知るために、まず辞書を引いてみた。辞書では、心を意味する「レバブ」を「内面の人、思いや感情の座、良心、勇気、そして理解」としている。(Kohlenberger / Mounce Hebrew.)衣を引き裂くことが「怒りと悲しみの惨憺たること」の表現であれば、心を引き裂くということは「内面の考えや感情のみじめさに悲しみと怒りを持つこと」となるのだろうか。イ・ジョンウ神父の表現を借ると、鈍くなってきた良心を断食し、正義の晩餐を楽しむこと、現実にへたり込む卑怯さを断食し、勇気の晩餐を楽しむことが、心を引き裂くことであると言え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果たして私たちは四旬節にそのように心を引き裂く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そういう意味では、四旬節の6週間というのは決して長いとは思わない。 이정우 신부의 「은빛 노을 못물결」에서 나는 지금 여기서 사순절의 금식이나 단식과 금육(禁肉)에 대해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한두 끼니의 밥이나 육류를 먹든 말든, 그걸 잘못 셈했다고 상습적인 고해성사를 보든 말든, 참된 회개와 보속(補贖;속죄)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비판을 금식하고…
アダムがこの世界に出てから、最初の夜を恐れながら送ったのは、きっと朝を知らなかったからである。次の日に昇る赤い太陽は、人生が復活したという証拠であり、夜の絶望の果てに明け方の復活があるという希望であった。春を知らない人は冬に絶望する。しかし必ず春は訪れて花を咲かせ、万物は自らの体をもって復活を証するのだ。主の手の釘跡に触れ、主の脇腹の傷跡に指を入れない限り、決して主の復活を信じないと言うのであれば、枯木の脇を突き抜けて顔を出す、軟らかい葉っぱを触ってみなさい。そして信じない者ではなく、信じる者になりなさい。 それから、トマスに言われた。「あなたの指をここに当てて、わたしの手を見なさい。手を伸ばして、わたしの脇腹に入れなさい。信じない者ではなく、信じる者になりなさい。」トマスはイエスに答えた。「私の主、私の神よ。」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あなたはわたしを見たから信じたのですか。見ないで信じる人たちは幸いです。」ヨハネの福音書20章27-29節 아담이 세상에 나와 첫날밤을 두렵게 보냈을 것은 아침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붉게 떠오른 태양은 삶이 부활한 증거였고 밤의 절망 끝에 새벽의 부활이 있다는 소망이었습니다. 봄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겨울에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어이 봄은 오고 봄은 꽃을 피우고 만물은 몸으로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손의 못자국을 만져보고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보아야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