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소망이란 무엇인가 20190818

2019年8月18日 主日礼拝 「신앙의 소망이란 무엇인가」 사도행전 28:16-20 바울은 몰타섬에서 3개월을 체재하면서 안식과 위로를 경험하고, 보디올(プテオリ)까지 마중나온 로마의 형제들을 만나 믿음의 교제합니다. 거기서 바울 본인이 위로와 용기를 받고 로마에 들어갑니다. 사도행전도 마지막에 다달았는데 사도행전의 선교에는 땀도 있고, 눈물도, 고통도 있고, 그로 인한 절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동역자의 위로와 하나님의 회복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에는 사람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동역의 위로 21090804

지난주는 바울이 탄 배가 파선하여 멜리데(몰타) 섬에서 3개월을 지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울 덕분에 배에 탄 사람들은 전원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범죄자 호송을 담당하고 있던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대단히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을 체재했던 그곳 멜리데(몰타)섬 주민들도 바울을 존경하여 바울을 좋은 대접을 하였던 것을 지난 주에 읽었습니다.   바울이 체재하고 있던 멜리데(몰타)섬에는 기분 좋은 가을…

멈추는 은혜

지난 번 설교에서 바울 일행이 타고 로마를 향하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배는 광풍을 만나 지중해 서쪽으로 밀려나 보름간 표류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길고 모진 광풍으로 승선자들의 구조의 소망과 살 소망이 완전히 끊어지고 탈진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그 배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예언하신대로 276명 전원이 생명의 손실을 입지 않고 구원되어 육지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을…

로마로 가는 길

시간은 흘러서 오늘 27장에 들어왔습니다. 막바지에 온 것 같습니다. 복음이 제국의 수도 로마까지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사도행전은 끝을 맺어갑니다. 주일 저녁 성경공부회에 오랫동안 요한일서로 공부했는데 지난주에 끝났습니다. 마치고 보니 짧은 요한일서를 아주 깊이 읽고 공부했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이 끝나면 우리에게도 사도행전을 잘 이해한 믿음이 뿌리처럼 내리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바울이 로마로 출발한 것은 A.D. 60년 가을이었습니다.…

설교:종의 자격 사도행전26:30-32 20190707

2019년7월7일 주일예배 「종의 자격」 사도행전26:30-32 설교 조용길 목사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기 전, 가이사랴 감옥에서의 마지막 변론이 끝난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변론의 시간에 바울은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만, ‘나의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가슴 뛰는 일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인생의 이야기 안에 살아있습니다. 남의 이야기에서 은혜받는 것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잠시의…

사랑에 미친 이야기

사도행전 26:24-29 베스도는 로마에서 파견나온 유대의 신임 총독입니다. 그래서 신임 총독의 부임 인사를 위해 유대왕 아그립파 왕이 총독부를 방문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인이고 베스도 총독은 로마사람입니다. 그래서 배스도 총독이 아그립바 왕을 만나자마자 지금 진행 중인 골치 아픈 사건, 이 바울의 재판 문제를 상담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는 유대인들만이 알 수 있는 그들의 종교와 전통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설교: 강대경 신학생

2019.06.16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12:1~4) 설교자: 강대경 신학생 1. 올해 들어 저는 창세기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지난 번은 노아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의 인물은 믿음을 갖는 모든 자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할 때 그가 나그네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그네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 자기 나라를 떠나 일시적으로 외국에…

사랑의 조명

요한복음14:26 근동의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구약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보다 더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당시의 문헌이 없기 때문입니다. 2000년전의 핼라어인 코이네 헬라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신약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당시의 언어와 문학과 사회와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이 기적처럼 보존되어 있는 책이 바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私の主 私の神・나의 주 나의 하나님

ルカはパウロの回心の証しを使徒の働きにおいて3回繰り返して記録していますが、それはパウロが決定的な伝道の機会に自分の個人的な証しをどのようにして有効に用しているのかを語るためであります。証しというものの意味とその役割を考えましょう。   私たちは福音を述べているのに、なぜ福音は力強く広がっていないでしょうか。もしかして私たちが語っている十字架、私たちが語る復活、私たちが語る天国が、私の十字架、私の復活、私の信仰、私の天国になっていない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伝道は教義や神学的な情報を物理的に伝達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福音が自分の命に入ってから起こった化学反応を示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際に伝道における個人の証しというのは不可避なものです。パウロは、この貴重な証言のチャンスに極個人的かつ主観的な経験、そして理性的でもなく、合理的でもない神秘的な体験を持って話しを続けています。自分がひどい迫害者であったこと、光を見て馬から落ちたこと、目が見え見えなくなったこと、イエスさまの声を聞いたこと、再び目を開けたこと、自分が伝道者として生まれ変わったことの話しなど、抵抗することはできない神様の介入を証ししています。   宗教的な経験というのは、人によってそれぞれが異なります。モーセは柴に茂みで現れた神様に召されました。ヨナは魚の腹で召しを確認しました。アブラハムの証し、ダビデの証し、ペトロとパウロの証しそれぞれ違います。全く同じ証しを持っている人はいません。ただ、それを証しする人と、黙っている人がいるだけです。神様が自分の中で入られたことを思い出してそれが偶然ではないこと、自分の計画も意志によるものではないこと、それが神様の恵みであることを認め、告白し、また証言をすることができれば、それこそが伝道の言葉です。つまり、福音を自分のものとしてかみ砕く必要があるのです。耳に福音がとどまっていてはいけません。自分の口の言葉で語れるように消化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アブラハムの神、モーゼの神、ダビデの神、パウロの神よりも大いなる神は誰の神でしょうか?私の神です。自分の神がいなければ、他人の神がどんなに大きくても自分と何のかかわりがあるのですか?もし、他人の天国ならば天国がどんなに良くでも自分と何の関係がありますか?皆さんの神様はいかがですか?クリスチャンと呼ばれるのは、聖書を信じる人ということです。神様のみ言葉が自分の人生の唯一の規範であることを告白できれば、それは信仰の告白です。また、それを自分の言語で語ることができればそれこそが宣教です。聞いた福音を語る福音にすること、福音が自分のものになることを祈ります。 ————————————– 바울의 회심 간증, 즉 바울이 박해자 사울의 때에 다메섹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서 전도자가 되었던 극적인 간증은 사도행전에는 9장에서도 나오고 22장에서도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6장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에서만 세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기록해야 하는 내용은 많은데 누가는 왜 이 사도행전에서 똑같은 바울의 간증 이야기를 세 번…

主よ、憐れみを・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主よ、憐れみを マルコ10:46-52 皆さん一ヶ月ぶりです。元気ですか?皆さんの健康のためにいつも祈っています。月に一度故郷の家・東京にきて聖書のお話しができることができることを喜びと思っています。今日も愛にあふれれている神の物語である聖書の一カ所を紹介します。新約聖書のマルコによる福音書です。背景は、エリコという町です。今では世界で最も古い都市の中で一つで有名な所ですね。パレスチナの死海のすぐ上にあります。そこに「バルティマイ」という盲人が住んでいました。当時の人々は、目が見えないことが罪のゆえだと思っていてからバルティマイは社会から差別を受け、疎外されている人でした。そういうことでバルティマイは物乞いしして生活をしていました。当然に目は見えないですが、耳はよく聞こえました。 見えなくなると耳はさらに聞こえます。だから道端に座り、通り過ぎる人々の会話から世間話を聞くことはできました。ある日、バルティマイの耳にイエスさまの噂が聞こえてきました。それは イエスさまという方が多いの群れと一緒にこの町を通り過ぎるとのことでした。バルテマイはそれを聞いて何か大きい期待感がありました。まず物乞いをする人とは、人々が多く集まるところがいいですね?たくさん人が集まると、収入がよくなるかもしれないから希望があります。それが道端に座って物乞いする人の一般的な考え方だと思います。でも、実は物乞いだけではないですね。目も見え、耳もよく聞こえる健常な人でも皆が経済的価値がある所に集まるのは同じです。バルテマイにおいても物乞いでもらうお金は大切です。その日の生存の問題です。しかし、バルテマイは経済的価値とその期待以上のことを願っていました。 当然だ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が、よく考えてみてください。人間は皆自分の究極的な必要が何であるか分からず、ただ経済的な価値のみを求めます。バルテマイはすでにイエスさまがこのエリコという町に入ってから、二人の盲人を癒し、悪質な金目当てのエリコの税務署長にあたるザアカイがイエスさまに出会って悔い改めたという話しをすでに聞いていました。バルテマイは見たかったです。闇を突き抜けて入ってくる光を見たかったです。その光があったこそ物事が見えます。光が照らさなければ、いくら視力が良くても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私たちが今まで見たのは、神様が人生の道に光を照ら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いよいよイエスがエリコに来られました。バルテマイは、イエスさまが通るときに人々に物乞いをぜず、イエスに向かって叫びます。「ダビデの子イエスよ、わたし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大声で叫んで、イエスさまのところに近づいて行きました。叫び声が大きく、人々はびっくりしました。人々がこの盲人がイエスさまに近づけないように追い出しました。静かにしろと叱りましたが、バルテマイはものともせずに、より大きく叫びました。 「ダビデの子イエス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と。ダビデの子と呼ばれたのは救うことのできるお方という意味です。バルテマイ神が送られたメシヤ、救い主を呼んでいたのです。イエスさまはこのバルテマイの叫びを聞いて立ち止まります。そして彼を呼びます。イエスさまはどこで立ち止まったのですか?イエスさまにすがる信仰があるところに止まっておられます。バルテマイはイエスさまの声を聞いて上着を置いたまま走っていきます。イエスさまが尋ねられます。「わたしに何をしてほしいのですか。」イエスさまはバルテマイに何が一番重要なのかはご存じです。しかし、本人に尋ねます。バルテマイは躊躇なくに言います。。「先生、目が見え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イエス様が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と言いながら目を開けてくださいます。バルテマイには新しい世界が開かれました。感動的です。-10:52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さあ、行きなさい。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いました。」すると、すぐに彼は見えるようになり、道を進むイエスについて行った。-このバルテマイは、世界を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目を覚ましたその時初めて見たのがイエスさまです。これで、バルテマイの人生の目的と価値が変わりました。イエスさまを見上げます。そして、イエスさまに従っていきます。 このバルテマイの叫びである「主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は、2000年間教会の祈りとなりました。教会は集まるたびにギリシャ語で「主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と祈りました。神様のあわれみを願う心を持って、礼拝を始めました。私はこれは人間が神にささげる最善の祈りだと思います。もしかしたら、自分がかわいそうではないと思っている人がいますか?それそこ盲人です。目があっても、人生の本質は見れない盲人です。自分でかわいそうだと思わない人、神様のあわれみと愛を必要としないと思う人こそが確かにかわいそうな人です。私たちは幸せを追い求め、祝福を望んでいますが、それは、神様があわれんでくださるから受けるものです。神様が照らす光の中で、私たちは幸せになることができます。主は、私たちの叫び声おを聞き、立ち止まります。ぜひ憐れみと慈しみを願う心を持ってイエスさまのお名前を呼ぶ祝福を祈ります。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가복음10:46-52 오늘도 사랑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성경에서 이야기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입니다. 배경은 여리고라는 동네입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지요. 팔레스타인의 사해 바로 위에 있습니다. 그 동네에는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