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열왕기하 16:1-9

16: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16:2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16:3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16:4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16:5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16:6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16: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16: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16: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기 까지는 수많은 선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가 선택하며 지나온 수많은 갈림길에는 선택 받지 못한 길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길들을 희생하며, 지금까지의 길을 걸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의미 없는 희생이라 생각했던 길 역시 있을 것 같습니다.

 의미 없는 희생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참 익숙한 단어이지만, 아마 이 세상에 의미 없는 희생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희생을 통해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 결과가 작고 보잘것없거나, 오히려 손해가 될 때에 우리가 의미 없는 희생이라는 말을 사용할 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유다의 왕 아하스의 선택, 그가 희생시킨 것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희생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예물, 자신의 예물들 뿐만 아닌 여호와의 성전에 있던 예물까지 였습니다.

 

 그 희생을 받은 앗수르는 아하스의 청 대로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몰아내어 줍니다. 아하스의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희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신 아하스가 치룬 희생은 의미 없는 희생, 그저 잃기만 하는 희생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희생에 힘입어 스스로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의미 없이 보이는 희생들에 자원하며, 그들이 말하는 의미 있는 것들을 희생시키는 자들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희생시키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가 희생시키는 것들이 하나님의 눈에 의미 없는 희생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의 가치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