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9:11-21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9: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백마타고 오신 예수님이 피 뿌린 옷을 입고 짐승과 추종자를 심판하십니다. 피 뿌린 옷을 입은 것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위해 흘렸던 보혈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아 심판하실 때 포도주 즙틀에 들어간 포도는 숨을 곳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어김없이 짓밟히고 마치 피를 튀기듯 아우성칠 것입니다. 일상으로 포도주를 밟는 이스라엘에게 이 광경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통으로 짠 옷을 입고 포도를 밟고 나오면 그 옷에 포도즙이 물들어 마치 심판을 마치고 나온 절대자같았을 것입니다. 죄의 삯을 치루시는 의로운 그러나 엄중한 심판자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 이름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며 하늘의 군대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짐승과 왕들과 거짓선지자와 그것을 섬기던 자들이 붙잡혀 유황불에 던져지고 남은 자는 그리스도의 입에 있는 검으로 죽고 새가 와서 그 살을 먹습니다. 오늘 본문의 광경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와서 만국을 통치하시고- 그 입에 있는 검으로 짐승과 왕들을 죽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감정과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위해서 세우신 기준에 근거하여 심판하십니다. 그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고 계십니까? 덮어놓고 은혜스러운 말, 덕담같이 듣기 좋은 말, 앞 뒤가 맞지 않은 억지 주장에 공허한 아멘을 외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검이라면 우리 안에 들어온 하나님 말씀은 칼의 역할을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기도회 말씀은 잠언 12:27이었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는다고 했습니다. 몸도 게으르지만 그보다 생각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게으른 사람은 이미 주어진 것도 붙잡지 않고 놓아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 라는 말은 희화적인데 잠언19:24 과 잠언26:15에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생각과 마음이 게을러서 말씀이 주어져도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심판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기려면 말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말씀을 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4:12- 말씀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그런 능력입니까? 암송하고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제 자신의 삶에 칼이 들어와야 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생각을 찌르고 쪼개고 찢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냅니다.

 

어제 신문기사를 보니 영국의 한 남자가 10년간 일콜 중독자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술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답니다. 술에 취해 넘어져서 다친 모습을 셀카로 찍고 잤는데 일어나서 그 사진을 보니 그 몰골이 참으로 한심해 보였답니다. 그래서 술을 끊었답니다.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심오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자신은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술주정뱅이의 망가진 모습으로 보고있는데 자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울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추어주었습니다. 그 때 자신의 망가진 현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속고 있습니다. 아니 속이고 살고 있습니다. 술을 끊은 기적보다 자신을 발견한 기적이 더 큰 기적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칼이 되어 우리의 생각을 후벼파고 마음을 찌르고 쪼개서 그 안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까? 그렇지 않으면 말씀은 날이 서지 않은 장식품으로 그저 전시만 되고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1장 1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1:1-3 – 하나님이 말씀이시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태초가 하나님이신 말씀으로 시작되었으니 마지막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질 것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법을 몰라 무지하여서 범죄하더라도 처벌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백성은 법의 공포를 듣고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 심판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말씀은 좋은 말씀이 아니고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유익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