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Time:두 증인 20191119
11장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과 함께하는 백성을 핍박하는 것들에 대한 성도들의 최종적 승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성전을 측량하라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습니다. 자를 준 것입니다. 천사는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조건을 측량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에게 계시가 임할 때는 이미 예루살렘의 성전은 모두 파괴된 후였습니다.
이방인의 뜰은 측량하지 말라고 했고 성전 안에서 예배하고 있는 사람을 측량하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구원의 측량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배자가 아닌 사람들은 측량에서 제외됩니다. 재림과 심판은 유죄선고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무죄 선고, 즉 구원 얻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에서 제외되는 것이 지옥입니다. 지옥을 위해 지옥을 만든 것이 아니고 천국이 아닌 것이 지옥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고통받을 때 굵은 베옷을 입은 두 증인이 예언한다고 했는데 본문은 이 두 증인이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습니다. 두 감람나무와 촛대는 구약 성경 스가랴 4장에도 나옵니다. 감람나무와 촛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감람나무는 감람유를 냅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앞에 서있는 올리브 나무는 가지가 약하고 잎도 꽃도 볼 것이 없으나 그 열매로 짜내는 올리브 오일이 유익합니다.
그 올리브 오일로 촛대에 불을 밝힙니다. 둘 다 불을 밝히는 도구들입니다. 올리브 오일은 불을 밝히는 연로를 공급하고 촛대는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힙니다. 그렇게 해서 두 증인은 핍박과 암흑의 기간 동안에 감람나무와 촛대처럼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그 말씀은 교회가 선포합니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성립조건은 성례의 집행과 말씀의 선포입니다. 어두운 시대에 그 어두움을 비추는 것은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의 등이고 빛입니다. 그래서 두 증인이라고 한 것은 신구약 성경입니다.
7절에 보면 바닥이 없이 끝없이 떨어지는 굴, 즉 무저갱으로부터 짐승들이 올라와서 전쟁을 일으키고 기어이 증인들이 순교당합니다. 말씀이 살해당하는 것이다. 가짜 성도들과 불신자들이 이 두 증인을 죽여야 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양심을 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왜곡은 어떻게 해서 생깁니까. 신앙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양심의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말씀을 변개하면서 왜곡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타락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찌르는 말씀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합리화하고 상대화하기 위해서 말씀의 해석을 바꾸어 버립니다. 말씀은 그렇게 불신앙의 상황에 따라 질식하고 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로 인해 말씀은 다시 부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해했던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 환란에서 살아남은 자는 심판의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