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1-10

 

찬송가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의 마지막 3절은 「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거친 비바람 상치 못하리」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못된 짐승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어려운 본문 해석에 앞서서 이 짐승이라는 존재와 성도의 대결을 생각해볼 때 성도가 짐승에게 이길 수 있는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성도에게는 짐승을 이길 만한 괴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가 성도다워야 하는 것으로 짐승의 야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인격이 야만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믿음이 환란 가운데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힘이다. 강제나 공포로 믿음을 지키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랑에 근거한 인격이 믿음을 수호합니다. 보십시오. 요한계시록의 온갖 무서운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엄중하게 경고하는 죄성과 세상에 드러나는 모든 죄악은 다 인간성의 결핍을 동반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과 용과 거짓 예언자는 동맹을 이룹니다. 사탄도 마귀도 거짓선지자도 인격을 가지만 타락한 인격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이 짐승이 역사 가운데 등장하는 제국과 권력이라는 해석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짐승에게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이 주어졌습니다. 네로는 전능한 신이라고 하였고 태양신 아폴로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에베소에는 네로를 구세주라고 호칭한 비문도 남아 있습니다. 본문은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한을 받고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경배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국의 역사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칼리굴라도 자신을 스스로 신이라고 하고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독하는 것입니다. 참고 참던 유대인들은 황제숭배의 강요에서 터져나와 유대와 로마의 전쟁, 유대독립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일제시대 막바지에 일본 홀리네스교단과 조선성결교단은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이 두 교단은 원래 형제교단입니다. 교리가 완전히 똑같습니다.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많은 목사와 성도가 옥고를 치르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홀리네스와 성경이 표제로 내세우는 4중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즉 중생, 성결, 신유, 재림입니다. 모든 기독교가 재림에 대한 교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리네스와 성결교단은 독특하게 그 전면에 재림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의 시범케이스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실 일제에 적극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해산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그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곧 예수를 현인신으로 믿는 것입니다. 천상에 있는 신을 종교적 예배하는 것이라면 종교로서 허용할 수 있겠지만 현인신으로 이 땅에 오는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있어서 정치적 문제가 됩니다. 일본제국주의에 물든 세상에서는 오직 천황만이 현인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충돌한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의 교리때문에 교회는 공중분해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진정한 성도는 허무한 것에 신성을 부여하고 절하지 않습니다. 일본 목사님들이 모여서 주기철 목사님을 공부합니다. 그것이 일본인이고 한국인이기 이전에 진정한 인간이고 올바른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더라도 인간성과 성도의 본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짐승에게 절하기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짐승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짐승은 권력과 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온갖 물건과 피조물 권력을 가진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 섬기는 야만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것은 하나님을 경배할 때이고, 성도가 성도답게 사는 것은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성도는 세상 권세를 잡은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고 어린 양을 따릅니다.「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거친 비바람 상치 못하리 나의 주님 강한 손을 펼치사 나를 주야로 지켜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 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함이 전혀 없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