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8-25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우리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서 소비하고 있는 에너지는 얼마나 큽니까. 현대는 이전에 없었던 가공할 소비사회이고 현대인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소비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삽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눈을 의식해서 소비하게 됩니다.
그것에는 분명히 일정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따져서 말해보면 자신을 위한 만족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했을 때의 만족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타인이 부러워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과시적 욕구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소비의 동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비뿐만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와 연애와 결혼, 학교진학과 직업선택, 자녀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작동하는 기준입니다. 이것을 정죄하기 시작하면 학살과 자살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장례식까지도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까?
미움받을 용기로 아들러의 심리학이 유행을 했지만 우리는 얼마나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아들러가 말하는 미움받을 용기는 실존주의적 자기주체성입니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적 관심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 우상의 본질은 자기 자신이라는 지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읽는 마리아 수태고지 사건은 어린 처녀 마리아가 임신하여 아기를 낳아야 하는 사건입니다. 미혼모가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순종을 본받읍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혹시 성경을 관념적으로 읽기 때문은 아닙니까? 순종한다는 것은 미혼모로 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일입니다.
피치못한 사정으로 임신했다고 하더라도 미혼모가 되지 않고 아이를 지우는 일이 있을텐데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도 아이가 싫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서가 아니겠습니까? 순종은 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미움을 받고 험담을 듣고 돌던짐을 당하고 차별을 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타자에 의존적인 사람은 사람들의 이목과 평가를 제일 먼저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려서 들리지 않게 됩니다. 마리아의 믿음이 좋았다거나 마리아가 말씀에 순종했다고 말하기 전에 마리아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확인되었을 때 사람의 이목을 개의치 않았던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해와 미움과 환란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상위의 가치가 확인되었을 때 마리아는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에게도 사회적 리스크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요셉은 파혼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이목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이목이라는 것은 요셉에게 있어서 두가지였습니다. 요셉 자신으로서는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동시에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지만 마리아를 살려야 했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하여 마리아를 임신시킨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도 꿈에서 천사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데리고 옵니다. 미혼모로 산다는 것, 미혼모와 결혼한다는 것은 다 어려운 결정이었고 세상의 이목에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들어야 하는 일이었겠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상위가치에 집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집중하기 쉬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부부를 통해 하나님은 이 땅에 임마누엘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