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태복음 25:21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일본 선교라는 소명을 가지고 일본에 오게 되었다. 일본 선교는 지금까지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복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 전 세계의 선교사들 사이에서 ‘선교사의 무덤’ 이라고 불리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부르심 하나 붙잡고 헌신을 다짐했다.

 

 이런 어려운 일에 부르심을 받은 만큼, 내가 더 열심히 준비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일본어를 잘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이라도 더 원어민처럼 말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본어를 입에 담았다. 일본어로 성경을 보고, 일본어로 기도하며 일본인들을 위한 사역을 준비해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 질문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에다가와 사랑의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있나?” 

 

 머지않아 지금까지 내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서야 정말 오랜만에 한글 성경을 펴고, 나의 가장 익숙한 말투로,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 회개할 수 있었다. 미래의 일본 교회를 위해서가 아닌, 지금의 에다가와 사랑의교회를 위해 마음 다해 기도할 수 있었다.

 

 일본 선교라는 일은, 내게 있어 너무나도 크고 중요한 일이며, 분명 하나님께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보내진 자리를 충성하게 살아내지 못하는 내가, 이후의 자리를 충성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지금의 자리는 내게, 그리고 하나님께 중요한 자리가 아닌 것인가?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하는 것은 분명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을 살아가야 한다. 미래의 모습과는 다른 현재를 보며, 아직 아니라고, 그 날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을 미래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자신들이 생각해왔던 메시아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이미 오신 메시아를 외면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간 나에게 일본어를 필요로 하는 영혼을 돌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 만을 바라보며 지금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