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골로새서 1:9-20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어제의 묵상에서 나누었던 시작과 끝과 같이, 모든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그 일의 시작된 이유와 과정이 동반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이유’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을 보면서 그 사실을 더욱 깨닫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모든 것의 이유가 예수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6년간, 제 2외국어 수업에서 일본어 외의 언어를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수업들이 지금의 제 일본어 실력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면, 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0%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저는 일본어를 공부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일본어 공부라는 결과를 내기 위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를 선택한 것은 제 2외국어 선택에 따라 반 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야 일본어를 공부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음악 유학, 그 다음은 일본선교라는 이유였습니다. 6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운 저였지만, 일본어를 시작하기 위해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를 외우는 데에만 3개월 이상 학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중고등학교때는 전혀 일본어 공부를 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어를 공부해야 할 이유가 명확해 질 수록 공부에 점점 속도가 붙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공부는 재능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어가 어느 정도 빠르게 성장하는 저를 보며, 저도 제가 언어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시도하여 보았지만 2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아직 영어를 공부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도 이유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 이유가 올바르지 않고 명확하지 않다면 다른 컬트 종교와 같이 기적같은 일을 바라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기도제목을 물어보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제목들, 건강, 학업이나 직장, 소위 교회를 좀 다녔다는 사람들은 신앙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건강하기를 기도할까요. 왜 학업이나 직장 생활이 잘 되기를 기도할까요. 왜 신앙이 성장하기를 기도할까요. 그 근거가 명확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지 않다면, 그 어떤 기도제목이라도 그저 자기 만족을 위한 기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모든 기도의 응답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기도하여 습관처럼 내뱉게 되는 기도문, 몸에 베인 행동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도들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건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기도일지라도, 선한 행일지라도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은 기도는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