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다니엘 1:1~9
1: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1: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1: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1:4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1:5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1:6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1: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 묵상을 시작하며

다니엘은 기원전 606년 1차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소년이었던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고위 관료가 되었고 기원전 538년 바밸론이 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으로 교체된 후에도 페르시아 권력 안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활동했던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다니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왕 3년(기원전 536)까지 살았는데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갔을 때가 16세였다면 고레스 3년에는 이미 85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유대인 회복의 명을 내리고 난 후 그제야 마치 사명을 마친 사람처럼 죽었습니다. 그는 이방의 지배자들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선지자였습니다.

 

다니엘은 민족의 타락과 바벨론에 의한 멸망, 그리고 포로와 억압, 페르시아에 의한 해방이라는 질곡의 역사를 모두 체험한 동시에 포로의 신분으로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걸쳐 정치적 권력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노예로 팔려 갔던 소년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소년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노예 생활 동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듯이 바벨론의 다니엘과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이집트 노예 생활 중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바벨론 포로시대에도 하나님은 유다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소망을 잃은 시대 안에서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어제까지 신약성경의 데살로니가를 읽었습니다만 다니엘이 만년까지 살았던 페르시아는 이후 마케도니야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에게 망합니다. 그 마케도니야의 주요 도시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입니다. 시대는 강자에 의해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역사의 면면에는 힘과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과 구속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유다지파입니다. 유다 왕조는 망했지만 유다의 위는 이어져서 약속대로 역사의 분기점에서 그리스도를 탄생시킵니다. 데살로니가를 읽기 전에 예레미야를 마치면서 마치 속편을 예고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예레미야가 끝나던 시대적 배경에서 다니엘이 시작됩니다.

 

다니엘 1:1~9

예루살렘은 망했지만 느부갓네살이 세상의 주인은 아니라는 것이 다니엘서의 전제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중앙정부에 의해 유다 출신의 엘리트 재원의 학생으로 집단 차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어떤 기준에 의해 선발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유다지파 출신인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족 출신으로 궁중 교육을 받았던 소년들일 것입니다. 물론 이 네 명 이외에도 학생들은 더 있었습니다. 목적은 순수한 학문의 장려가 아니고 바벨론 포로민 정책의 일환입니다. 유다 출신의 충성스러운 바벨론 신복을 양성하여 유대인의 바벨론 동화정책을 추진하고 그것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소년들은 바벨론식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습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곧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들은 특별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왕의 음식과 포도주까지 제공받았습니다. 왕의 음식은 고급이기도 했겠지만 왕의 하사품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포로 민족이 그것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황송한 일이겠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그런 무엄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교육으로 이미 유대인 정체성이 투철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이 준 음식을 거절합니다. 저자는 이 위기 상황을 전면에 배치하고 갈등 상황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현재의 배경을 구성한 상황, 즉 바벨론 포로라는 상황과 우수한 인재로 발탁되었다는 상황이 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배경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의지가 드러난 것은 네 명의 소년이 위기와 갈등을 무릅쓰고 신앙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문학적 긴장감을 사용하지 않고 서둘러서 결과를 밝힙니다. 환관장과 왕의 반응을 말하기도 전에 먼저 하나님의 반응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여 환관장의 마음을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구했던 것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것, 즉 하나님과 약속한 신앙의 순결, 그리고 자신과 약속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왕의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와 유혹에 대해서 노(No)라고 선언할 줄 아는 신앙의 뼈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유혹의 기회에 노(No)라고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믿음과 양심에 대해서 예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 이외의 선발자들은 이것을 기회로 여기고 순응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자신을 구별하는 것이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이 두려워서는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자신을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가 바베론이든 느부갓네살이든 그것에 대해서 이미 이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