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데살로니가후서 2:13~3:5
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2: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2: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3:4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믿음의 정당한 이해 위에 서기를 권면하면서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데 첫째는 바울 선교팀이 복음을 속도있게 전파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방해 세력에서부터 보호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수한 기도의 요청이기도 했지만 기도의 제목을 오히려 권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발신하고 그릇된 이해와 영향을 경계하라는 요청입니다. 교회를 건강하고 든든하게 세우는 것에 있어서 불가결한 것은 복음의 전파입니다. 전해보지 않으면 믿음의 실상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말합니다. 주목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 현실적으로 역사적으로 이 말씀은 사실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아니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8:23~24」 라고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과입니다. 선교의 길에서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말씀을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신념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론은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이해에는 자신이 흘린 피와 땀이 배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얼마나 많은 거절과 위협을 받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전도훈련을 받은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성공적인 전도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는 것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도를 하고 있지 않을 뿐 전도를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는 없습니다. 선교가 없을 뿐입니다. 복음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입니다.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면 박해도 멈추지만 선교도 멈출 것입니다.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