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가복음 9:2~13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9: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9: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9:9 저희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9:10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9: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9:12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변화산 이야기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삶과 죽음에는 닮은 모습이 있습니다.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 나타난 것과 그들의 죽음이 신비하게 감추어져있다는 것이 특징적으로 닮았습니다. 모세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 없었고, 엘리야 또한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승천했습니다. 유대 사회는 지금도 말라기 4장을 근거로 언젠가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살다가 광야에서 홀로 죽었고, 엘리야도 로뎀나무 밑에서 홀로 죽기를 구했던 외로운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 당시로부터 1400년 전의 사람인 모세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율법으로 통하고, 800년 전의 사람인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집을 짓고 사신 분이 아닙니다.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진 자리에서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집에 머물러 살지 않듯이 성도는 육체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율법과 예언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 즉 율법과 예언은 사라지고 서포트라이트는 오직 예수님에게 집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그것이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엘리아 사이에 서 있던 예수님은 두 강도 사이에 서서 죽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