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57:1~11
57: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57: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57: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57:4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57:6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7: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57:10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57: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57편은 인간이 처한 비참함을 탄식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적국인 블레셋으로 도망갔다가 블레셋 왕 앞에서 침을 흘리면서 미친 척하여 살아난 후에 쓴 시입니다. 다윗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인생이 바닥을 차고 자존감이라고는 남아있을 않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낮은 바닥에서 비참함을 경험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참된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아니시고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것이 위로이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칼빈이 말하기를 인간은 상실과 회복의 과정, 자기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존재의 비참함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품의 크기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기 인식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시작하면서 이것을 제일 먼저 썼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자기 인식과 하나님의 인식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깊이 있게 이해할 때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갈 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7절의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는 자기비하를 비켜갈 수 없는 한 명의 비참한 인간이 삶과 신앙의 의지를 다시 한번 다잡고 있는 것이고, 8절의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새벽이 다윗을 깨우는 것이 아니고 다윗이 어둠 가운데서 새벽을 깨우겠다는 선구자적 의지입니다. 모든 인간의 모든 고난과 역경은 영광의 하나님 안에서 마음을 확정하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를 아는 지식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가능합니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9」 만민들이 세상에 집중해 있을지라도 나는 주의 영광을 찬송하겠습니다. 다윗은 가장 비참한 시간에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찬송과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