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열왕기상 1:1~10
1:1 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1:2 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1:3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 왔으니
1:4 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
1:5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1:6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1: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1: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1: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 하였더라

 

다윗이 늙고 쇠약해졌습니다. 유다 정부는 다윗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아비삭을 후궁으로 들여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그러한 때 다윗은 정치적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압살롬에 이어 다시 한번 아들이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늙은 왕을 상대로 반역을 일으켰다는 말은 차기 왕권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왕자에 의한 난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을 차기 왕으로 내정하고 있었고 권력욕을 가진 아도니야가 군부의 실세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함께 군대를 동원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반란을 모의한 요압과 아비아달은 둘 다 다윗에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에게는 아들의 배신 못지않은 큰 배신감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노년의 삶이 평화로우면 좋을 텐데 다윗은 또 험한 꼴을 당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일을 반복적으로 당했으니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겠습니까? 그러나 정치와 권력의 세계에서는 부모자식간에도 칼질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권력을 탐하는 것이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세계 안에 들어가면 그것은 이미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빼앗기면 정적에 의해 당하기 때문에 거짓도 기만도 배신도 폭력도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일 뿐입니다.

 

젊은 다윗이 권력에 취해있을 때 부하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면서 다윗 인생에는 크나큰 굴절이 생겼습니다. 그 대가로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예언은 실제가 되어서 다윗은 자신의 가정사 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당한 아도니야의 반역도 아직 끝나지 않은 다윗집의 칼이라는 책임의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윗은 젊고 아름다운 후궁 아비삭과 동참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늙어 힘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욕이란 생식기능이 아니라 뇌의 기능입니다. 기력이 없어서 동침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노년의 다윗에게는 회한이 많았기에 근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였고 이웃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던 일인지를 참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회한의 근신을 하지만 자식 문제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