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29~40
22:29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22:30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니라
22:31 아람 왕이 그 병거의 장관 삼십 이인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22:32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필연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지르는지라
22:33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22:34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22:35 이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22:36 해가 질 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하더라
22:37 왕이 이미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장사 하니라
22:38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의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22:39 아합의 남은 행적과 무룻 그 행한 일과 그 건축한 상아궁과 그 건축한 모든 성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40 아합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그를 옥에 가두고 전장에 나갑니다. 미가야의 예언이든 시드가야의 예언이든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무엇을 자신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고집대로 전투를 강행했지만 스스로 두려웠던 아합은 지휘관이 아닌 병사 복장을 하고 전장에 숨어 들어갑니다. 오합지졸이 아니라 아합지졸입니다. 아람 군대는 아합을 찾아 죽이려고 32개조 특수부대를 운용했으나 아합을 발견하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조준하지 않고 쏜 화살이 아합에게로 날아갔고 하필이면 아합의 갑옷 이음새를 비집고 들어가 아합을 찔렀습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살려고 병사 복장을 했으나 살지 못했고, 죽이려고 특수작전을 폈으나 아합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노룩 사격에 어부지리 명중으로 아합은 피를 흘리기 시작합니다. 아합은 어이없게도 미숙한 궁병의 오발에 맞아 죽습니다. 군통수권자가 이등병으로 숨어있다가 오발탄을 맞아 전사한 사건입니다. 인간의 계획과 책략은 허무한 것이고 우연으로 보이는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틀림없는 결과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합이 그 화살에 맞은 것은 하나님이 좌표를 계산하셨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들 모여 있는 모습을 오합지졸이라고 합니다. 까마귀의 세계에는 리더가 없기 때문에 제각각이고 그래서 오합지졸입니다. 졸(卒)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졸병의 졸이고 하나는 죽음의 졸입니다. 아합은 졸병으로 변장했다가 죽었습니다. 아합지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언대로라면 아합이 흘린 피를 개들이 핥을 것입니다. 아합은 죽어서 사마리아에 돌아옵니다. 아합의 시체를 싣고 온 수레에 피가 고였고 바알을 섬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연못에 그 수레를 씻을 때 개들이 와서 아합의 피를 핥았습니다.
악인의 죽음을 보는 것도 결코 기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합을 죽이는 것을 원하셨다면 미가야를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고, 아합이 미가야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면 아합은 죽지 않았을 테니까요. 미가야 역시 아합이 죽기를 바랬다면 굳이 미움받으면서까지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살리려고 하지만 기어이 죽어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악인이라고 했던 아합의 이야기가 길게 나오는 것과 하나님이 아합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은 못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