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예레미야 47장 1-7절
47:1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47: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방에서 일어나 창일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 거하는 자들을 엄몰시키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거민이 애곡할 것이라
47:3 힘센 것의 굽 치는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의 울리는 소리에 아비의 손이 풀려서 그 자녀를 돌아보지 못하리니
47:4 이는 블레셋 사람을 진멸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줄 자를 다 끊어버리시는 날이 이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멸하시리라
47:5 가사가 삭발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멸망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47:6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47:7 여호와께서 이를 명하셨은즉 어떻게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하여 그가 명정하셨느니라

 


46장에서 51장까지는 유다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에 대한 예언이 이어지는데 오늘은 이집트에 이어 두 번째로 블레셋에 대한 예언입니다. 블레셋은 동쪽으로는 유다와 접하고 있어 항상 싸우는 처지였고 남으로 이집트, 북으로는 앗수르 또는 바벨론이라는 거대 메소포타미아 세력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1절은「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로 시작하는데 가사는 가자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 분쟁을 통해서 뉴스에서 자주 들었던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입니다.

 

1절에서는 가사를 치러 온 것이 바로(파라오), 즉 이집트의 왕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절은 북방에서 일어난 세력 즉 바벨론에게 고통을 당한다고 말하고 있어서 블레셋의 고통이 이집트에 의한 것인지 바벨론에 의한 것인지 그 상황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다만 단회적인 하나의 전투 사건이 아닌 블레셋이 받은 침략의 역사를 관조하면서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충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원전 609년에 이집트의 바로느고가 바벨론과 싸우기 위해 출정했을 때 이집트군은 북쪽으로 진군해서 므깃도에서 반이집트를 표방하던 유다 군대를 맞아 요시야 왕을 죽였습니다. 그길로 갈그미스로 향했는데 그사이에 블레셋에 대한 이집트의 공격이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까지 패권주의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가 유다를 응징한 것은 건재함의 과시였을 것이고 그것은 블레셋에게도 동일했습니다.

 

블레셋도 유다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와 바벨론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집트는 블레셋이 딴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이른바 본때를 보여준 것입니다. 외교정책에 실패한 블레셋은 이집트에게 얻어맞고 다시 바벨론에게도 얻어맞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기원전 604년에 느부갓네살이 블레셋 해안 평원에 나타나 아스글론을 포위 공격하고 블레셋을 점령합니다.

 

예언된 블레셋의 고통은 수사학적입니다. 큰물이 넘쳐 창궐할 때 그 수마가 사람의 사정을 보아주지 않는 것처럼 바벨론 군대가 블레셋 땅에 들어올 때도 그러할 것이고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소리가 들려올 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그 손에서 놓친 자기의 자식에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가사가 삭발될 것이라고 그 처참함을 표현했습니다.

 

4절은 이 모든 재앙의 주어를 이집트와 바벨론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블레셋 사람을 진멸하시며 … 여호와께서 갑돌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멸하시리라 4」 7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7」 고 말씀합니다. 이집트 군대에 의한 것이든 바벨론 군대에 의한 것이든 블레셋의 재난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므로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아무도 중지시킬 수 없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이집트에 당하고 또 바벨론에게 당했는지 하나님은 어떤 이유로 블레셋이라는 작은 나라를 징벌하셨는지에 대한 언급은 여기에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유다의 멸망의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다의 멸망의 이유를 우상숭배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것은 종교적이고 의식(儀式)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지도 않았던 블레셋에게 종교적 징계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곧 자신을 섬긴다는 것이고 자신을 섬긴다는 것은 곧 의도적이든 구조적이든 남의 권리를 빼앗게 되는 일입니다. 탐욕이 없이는 자신을 섬길 수 없고 자신을 섬기면서 탐욕을 부리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유대 사회에 무너졌던 사회 정의, 사라져버린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읽었습니다. 참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그러한 사회적 타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인간은 호모 모랄리스입니다. 율법을 제시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내재해주신 도덕률이 있습니다.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은 도덕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악과 탐욕에게 있어서 불편한 것이기에 인간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서로 만나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도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도덕을 피해서 탐욕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코로나가 민족과 종교를 차별하지 않듯이 타락이라는 공기는 시대의 모든 사람이 함께 호흡합니다. 블레셋의 파괴의 이유를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공기를 정화하고 계시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계신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