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예레미야 52:12~23
52:1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년 오월 십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52: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52:14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52:15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빈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옮겨가고
52:16 빈천한 국민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52:17 갈대아인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에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52:18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52:19 시위대 장관이 또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는데
52: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받침 아래 있는 열 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수 없었더라
52: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고가 십팔 규빗이요 그 주위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사지놓이며
52: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고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으며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일백이었더라

 


본문은 다윗 왕조의 비참한 최후에 이어서 하나님의 성전과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영이 설 줄 알았던 다윗 왕조는 망하고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두 눈이 뽑인 채 끌려갔고 하나님의 임재라고 여긴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언약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가 흩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동안에 누려왔던 특권은 몰수되었고 징계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엄밀하게는 유다가 바뀌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그 결과로 처벌하신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징계라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을 되돌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평안을 구하지만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 처할 때 자신도 알지 못하던 잠재된 은사가 개발됩니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옵니다. 원치 않는 절망의 상황에 처하고 보면 그제서야 잃어버린 믿음을 발견합니다. 그동안의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누리고 살았던 권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성전이 무너진 것은 예배를 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성전을 파괴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곧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으니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드러나시려면 그 성전은 망해야 했습니다. 왜곡된 확신은 파괴되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종교적 건축물로서의 성전이 곧 하나님의 임재가 아닙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면 예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벨론의 느부사라단이 부순 성전은 다시 세웠지만 로마의 티투스가 최종적으로 다시 부숴버렸습니다. 그리고 2000년간 예루살렘에 성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거기에 유대교의 성전을 다시 세우고 피의 제사지내는 날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라는 지역과 성전이라는 건물에 아직도 하나님을 묶어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성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니고 예배당입니다. 성전 건축이 아니고 예배당 건립입니다. 예배당의 목적은 에배하려는 성도들이 모이기 위한 장소입니다. 거기에 종교적 위엄을 색칠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자를 동원하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 기만으로 건물에 권위를 부여해왔던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전과 진정한 예배 사이에 묶인 사슬을 분리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성전은 무너지지만 성전 예배에 필요한 기명들은 바벨론이 약탈하여 가져 갑니다. 교만해진 바벨론은 하나님을 예배하던 기명에 술을 따라 마시다가 그날 밤에 망했습니다. 70년 후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다의 포로를 귀환시키고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전의 기물을 다시 가져와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왜곡된 확신은 파괴되고 전통과 관습 안에 매몰된 본질은 회복되고 지식과 양심이 새로움을 입었습니다. 마음이 기경되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시 예배를 회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