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잠언 13:13~25
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13: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3: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13: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13:23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하므로 양식이 많아지거늘 혹 불의로 인하여 가산을 탕패하는 자가 있느니라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13: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길은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사람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길을 묻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사람이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도전해서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이 길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아무도 찾지 않던 길을 찾아낸 것뿐입니다. 이사야 43장의 소망,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43:19」 여기서 나는 하나님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주체는 불굴의 믿음을 가진 어떤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라는 현실에서 길을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을 믿는 사람, 사막이라는 절망 가운데로 강물이 흘러갈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이 하나님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발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이유는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그것을 행합니다. 그것에 시간을 쓰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자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것 때문에 말씀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세상이 주인이고 그것에 충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따라 넓은 길로 다니지만 그 길 끝에서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가 아니고 허무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주 논쟁의 화두가 되는 자녀 체벌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13:24」 초달은 회초리를 말합니다. 이 말씀을 가정폭력, 아동 학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주제를 찾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폭력이나 학대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소중한 자녀가 스스로 죄의 본성을 누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절박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모든 인생의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 위에 서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