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잠언 23:1~16
23: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23:2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23:3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간사하게 베푼 식물이니라
23: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23: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지어다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
23: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23:9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23: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외로운 자식의 밭을 침범하지 말찌어다
23:11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너를 대적하사 그 원을 펴시리라
23:12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23:14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23: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23: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8절은 경제적 유혹에 대한 처세입니다.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함정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에게 대가없이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탐욕과 본능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대응하면 세상의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유혹에 굴복당하고 실패하면 세상에게 조롱당합니다. 유혹이 기회로 가장하여 접근할 때 욕심이 아닌 것으로 대응해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배고파도 비굴하지 않고 배불러도 거만하지 않는 의연함이 있어야 기회와 유혹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좀 더 높은 사회성을 요구합니다.

 

9절에서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차별하고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주나 진주를 주는 사람의 비정함이 주제가 아니고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가 주제입니다. 돼지가 진주를 밟고 있는 데도 진주를 던져주는 것은 들을 줄 모르는 돼지와 비견되는 어리석음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습니다. 막힌 귀는 밖에서는 뚫을 수 없습니다. 안에서 뚫어야 합니다. 가르침은 들으려고 할 때만 유효합니다. 더 높은 사회성을 필요로 합니다.

 

10절과 11절은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고합니다. 지계석을 옮긴다는 것은 경계표식인 말뚝을 뽑아 다른 곳에 꽂는다는 것입니다.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강탈과 횡포는 항상 있지만 말씀은 그들을 항상 대적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적이 되어 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함께 살아야 하는 더 높은 사회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부터 16절은 채찍을 때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이를 훈계하고 징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체벌 찬반의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가 체벌하지 않더라도 한 인간은 삶을 통해서 채찍을 맞는 듯한 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자기 본성을 억제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 연습과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고통을 당해야하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아니어서 손에 채찍을 들고 우리를 때리지 않지만 삶을 지나와보면 하나님의 채찍을 맞은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더 높은 사회성을 요구하십니다. 아니 그것은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고, 허무하지 않고 보람있게 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