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잠언 24:23~34
24:23 이것도 지혜로운 자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24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4: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4: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4: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4:28 너는 까닭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4: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24:30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24:31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24: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24: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24:34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구원의 믿음은 인간이 손으로 행하여 이루어 내는 성과가 아닙니다. 구원의 믿음은 인간의 종교적 노력과 공로의 성취가 아니고 절망적인 자신을 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에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꼭 필요한 능력은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을 깊이 관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관찰하고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다 보면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 중에는 애쓰고 수고하며 행하여야 하는 믿음도 있습니다. 씨를 뿌리러 나가고 밭을 경작해야 하는 성실과 노력은 이 땅을 사는 성도에게 주어진 믿음의 요구입니다. 그것은 파종하고 경작하여 생산과 이익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태하지 않고 활성화 모드로 살아 있으면서 하나님의 기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고집스럽게 욕심부리고 살다가 정작 성실과 책임의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는 교만과 무책임으로 전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33,34」 현대인에게 잠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일을 많이 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 잠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불안과 걱정, 그리고 그것을 마취하려는 알코올과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로 잠 못 이루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좀 더 자려는 사람, 좀 더 누워있으려는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충분한 수면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나태로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잠은 충분히 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지 않는다고 해서 생산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쉬지 않는 긴장의 연속이 아니고 「사명이라는 수축」과 「안식이라는 이완」이 삶과 믿음의 집중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어제 충분히 안식했다면 오늘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과 책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마트폰 부여잡고 「좀 더 보자」, 「좀 더 미루자」고 하는 중독적 나태를 버리고 내일을 위해서 「좀 더 일찍 자자」로 바꾸어도 잠언의 저자는 동의해 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