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전도서 1:1-11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전도서는 오해의 소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이며 노골적으로 인생은 허무하다고 단정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2」 허무하지 않으려면 우선 의미를 알아야 할 텐데 사실상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 중에 왔다가 모르는 중에 가야 하니 허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더 허망한 것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받아들이고 주어진 시간을 살면 겸손할 수 있을 텐데 안다고 말하고 그것을 고집부리기 때문에 더욱 허망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삶에서 불행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행복만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불행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삶 안에는 불행이 있고 그것도 인생을 차지하는 하나의 부분입니다. 인생이 허무라는 솔로몬의 프롤로그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3」 자기를 채우기 위해서 욕심부리고 살지만 결국 자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은 조금도 곤란하지 않으십니다. 자기를 채우기 위해 욕심부렸던 그 많은 것들은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쓰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자기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청지기 즉 관리자라는 의미로 소유와 권한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5」 해는 뜨거나 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띵굴띵굴한 지구가 빙글빙글 돌 뿐입니다. 자기가 돌다가 해가 보이지 않으면 해가 졌다고 섭섭해하다가 다시 돌다가 해가 보이니 희망의 해가 떠올랐다고 반색하는 것입니다. 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해가 뜨고 진다는 표현 자체가 시적이라기보다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를 표현하는 말이지도 모릅니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6 」바람의 미스테리에 대해서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나오지만, 바람이 왜 부는지,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온도와 기압 차이로 바람이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이 왜 바람이 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에 그 동질감 때문에 바람 앞에 섰을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7」가수 한영애의 「여울목」이라는 노래를 좋아했는데 물이 꿈과 함께 흐르다가 여울목에서 휘말려 꿈과 헤어져 흘러만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들었던 노래지만 나중에 다시 듣고 보니 사는 것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항할 수 없는 체념의 미학을 만납니다. 길을 잃은 물은 감히 거부할 수 없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맑은 시냇물 따라 꿈과 흘러가다가
어느 날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여울목에서

나는 맴돌다 꿈과 헤어져
험하고 먼 길을 흘러서 간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거친 파도 만나면
눈물겹도록 지난날의 꿈이 그리워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거친 파도 만나면
눈물겹도록 지난날의 꿈이 그리워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여울목-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8」 사람은 지상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욕심을 부려보지만, 세상이 천국이 되려면 아마도 사람이 욕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고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유튜브에 있는 수많은 설교는 누가 다 듣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 많으면 교회와 세상은 변했을 것입니다. 어쭙잖은 나의 글과 말로 그것에 하나가 더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항상 생각합니다. 들어도 바뀌지 않고 보아도 족함이 없으므로 욕심과 허무를 헤매는 인간은 다 피곤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4」 이 말씀은 자주 인용했던 말씀입니다. 부동산을 등기 소유했던 사람들은 언제 왔다가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땅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땅은 누구에게도 소유 당하지 않았습니다. 등기소유자는 그 땅에 묻혀 흙이 될 것입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9」 새로운 창조는 없습니다. 신기술의 반도체도 땅의 흙과 광물로 만든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1차 재료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놀랄 일도 없고 신기할 일도 없습니다. 세상은 바뀌고 발전하는 것 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같은 것을 위해 고민하고 살아갑니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0,11」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그 이름을 남겨서 무엇합니까? 차라리 호랑이 가죽이 더 실용적이겠습니다. 사람들은 그림을 남기고 책을 남기고 업적을 남기고 동상을 만들어 남기지만 누가 그를 기억한다는 말입니까? 자기 자식들이 잠시 기억하다가 그마저 기억에서 사라지면 내가 세상에 왔던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억한들 내가 기억이 없는데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부모의 장례식에서 남겨진 유산을 가지고 싸우는 인간들이 있는 것을 보니 자식을 기른 사랑도 허무하고 억척스럽게 모은 돈도 유해합니다. 죽은 육체가 하루도 채 기억되지 않는 것 같아 불쌍하고 허무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욕심을 부리는 것을 소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허무한 사람이 빛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소망이라고 할 것입니다. 멸망의 공포가 없는 사람은 구원을 알지 못할 것이고 구원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허무의 실존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전도서는 말을 함축적으로 하는데 오늘 아침은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허무의 프롤로그로 시작한 전도서의 에필로그는 어떤 것인지 읽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원인과 결과이시므로 하나님 말씀 앞에 있을 때는 허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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