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14:35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슈퍼마켓에 가면 소금 한 봉지를 백엔 정도의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예수님 시대에 소금은 귀한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 노동자의 보수를 샐러리 (Salary)라고 했는데, 그것은 소금 (Salt)에서 유래된 것이다. 당시에 소금이 재산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금으로 보수를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하고 소금을 받아오는 사람을 샐러리맨(Salary man)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에서 소금은 소제와 번제의 예물 위에 뿌리는 성물이기도 했고, 음식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이기도 했고 의료용으로도 사용되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도 음식의 맛을 내는 용도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다. 맛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음식에 소금이 사라진다면, 그 맛은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소금은 짠맛만 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식재료의 고유의 맛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금의 용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헌신과 닮았다.
소금이 짠 맛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염화나트륨 결정체인 소금이 짠맛을 잃을 수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의 소금은 사해의 물을 증발시켜서 얻었다. 그래서 채취 과정에서 순수한 소금이 있는가 하면 소금이 아닌 것의 결정체도 있었다. 그것이 맛을 잃은 소금, 다시 말하면 소금이라고 착각된 가짜 소금이다. 당연히 버려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맛을 잃은 소금이란 가짜를 말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4장에는 몇 가지 다른 이야기가 유효한 접속사가 없이 병렬되어서 나온다. 다만. 14장 전체를 읽다가 보면 그것의 공통적인 키워드가 일관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금은 짰다가 싱거워지거나 싱겁다가 짜게 변할 수 없다. 모름지기 소금이라면 늘 짜야만 한다.
복음은 맛을 잃지 않는다. 결코 복음은 싱거워지지 않는다. 맛을 잃는 것은 사람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듣는 우리는 더 경건하고, 영향력 있고,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소금의 비유는 모범적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인식하고 사는 성도의 삶의 일관성에 대해서 말한다.
부모에게 좋은 아들이었던 적이 없고, 자녀에게 좋은 부모이지 않고, 좋은 남편이지도, 좋은 목사였던 적도 없다. 항상 나의 염분의 농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늘 싱겁다. 그러나 오직 유일하게 내가 염도 높은 짠맛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용서받은 죄인일 때뿐이다. 용서받은 한 죄인으로서는 아주 진한 짠맛을 가지고 있다. 희석하지 않고 혼합하지 않고 복음을 끝까지 붙들고 사는 것이 세상의 소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