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요리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먹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리의 첫 번째 동기는 누군가에게 먹이기 위한 것이다. 좋은 음식점이란 음식을 많이 팔아 더 많은 돈을 벌려는 곳이 아니라, 배고픈 손님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 결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축복일 것이다. 결혼 후에 가족에게 맛있는 것을 해 주고 싶어서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다. 엄마들이 항상 부엌에서 수고하고 희생하는 줄 알았는데 음식을 해서 가족을 먹여보니 거기에 알짜배기 행복과 은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먹이는 사람이 복되다. 먹는 사람은 살이 찔 뿐이다.

 

시골에서 도회지로 올라온 친척 어른들은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다. 이른바 계 모임이다. 엄마, 고모, 숙모, 당숙모들은 모일 때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부엌에서 밤새 음식을 준비했다. 그날에는 어린 우리가 평소에는 먹어보지 못하던 온갖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엄마들은 비록 자식들에게는 먹이지 못할지라도 친지 어른들이나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는 최고의 것으로 대접했다. 아저씨들은 안방에서 담배를 물고 맥주를 마시며 고스톱을 쳤다. 지금이면 쫓겨나도 열 번은 쫓겨났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이 당연했다. 아줌마들은 부엌방에서 그 밥시중과 술시중을 들면서 짬짬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아줌마들의 틈 사이에 끼어서 이것저것을 얻어먹으면서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밤새 준비해서 손님을 대접했을 때, 「이 집 음식은 참 맛있어!」라고 말해줄 때 그것으로 모든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난 그 말이 참 신기했다. 그 말 한마디 들으려고 그 고생을 했다는 말인가? 그런데 내가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먹여 보니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의상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뿐인데 그래도 좋아서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사람 마음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두 번째 동기,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목적은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이다. 음식을 만드는 모든 사람은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음식을 만든다.

 

나의 어머니는 가족의 식사가 끝날 때 즈음에 본인이 만든 음식 중의 어떤 음식에 마지막 숟가락을 올리면서 「나는 이것이 참 맛있다」는 말을 남기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들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내가 밥을 해보니 그제야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엄마!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어요」 엄마는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음식을 만든 사람의 사랑, 맛있게 먹은 사람의 만족, 감사하는 마음이 가족의 행복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태생이 표현을 잘하지 못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문화에서 자랐다. 그러나 맛있는 것은 맛있다고 말하고,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자주 말한다. 하나님 보고 봉사했으니 사람들에게 티 내지 말고 사람들에게 바라지 말라고… 맞는 말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성도들이 해야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를 의식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가서 수고했다고 말하라고, 고맙다고 말하라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하라고… 가정과 교회에서 섬기시는 모든 분들에게 마땅히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