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고향인 부산에는 갈 일이 없어졌다. 부산에는 남아있는 친구와 친지들이 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다. 부산이 고향인 줄 알고 살았는데 부산이라는 지역이 아니라 부산에 살던 부모가 고향이었나 보다. 부모가 없으니 갈 일이 없다. 부모를 만난다는 인격적 관계가 없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부산은 그다지 그리운 곳도 아니다. 부모가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동네로 돌아가는 것은 오히려 슬픈 일이었고, 어린 나를 키우던 젊은 부모를 기억하고 보니 세월이 무상하고 마음은 허무했다. 어릴 적 흔적이 남아있지도 않은 한국의 도시에서 자란 세대에게 사실 고향이란 것은 없다. 고향의 정서와 가족의 인격이라는 관계에는 분명히 교집합이 있을 테지만, 그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 같지도 않다.

 

교회는 어떤 의미일까? 고향이나 고향 집에서 느끼는 정서 같은 곳일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인격과 만나는 곳일까. 둘을 구분하여 선을 긋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마냥 섞어놓고 있기에는 불편한 것이 있다.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교회가 수십 년간 만들어 낸 그 시대, 그 교회의 문화와 정서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람들은 교회가 좋고 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처음 교회에 들어갔을 때 나는 교회의 정서가 불편했다. 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교회 정서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불편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어도 고향 집의 마당에 들어가는 익숙한 정서가 있고 그것을 편하게 여길 수 있다면 그것은 인격적이라기 보다 정서적인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 공간이 부산에 살던 우리 집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우리 집이면 더 좋겠지만, 대화할 수 없다면 그 공간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인격이 없이 시대와 사람들 안에서 만들어진 신앙 정서가 있다면 그것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오래 갈까? 교회에 오래된 고향 집 같은 정서가 있을지라도 아버지와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인격이 없다면, 그곳을 찾아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내가 부산에 가지 않게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