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21~29
4:2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4: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4:24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4: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4: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4: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곡식이라
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1」 등불을 켜면 그것을 숨겨놓거나 덮어 놓지 않고 위에 두어 빛이 비추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하실 때 성도에게 빛이 되어 빛을 비추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빛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2」 진리라면 그것은 변하거나 퇴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빛을 발하려고 하거나 빛을 비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스스로 빛이라면 숨길 수 없이 빛날 것이고, 스스로 진리라면 반드시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대시절 산에서 새끼 토끼를 쫒아간 적이 있습니다. 토끼가 도망가다가 잡힐 것 같으니 풀섶에 머리를 쳐박더군요. 자기 눈에 안보이니 숨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은 좀 다를까요? 손으로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그래서 자기 손바닥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는 그런 사람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논리적으로 말할 때만 동의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면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학적 방법론은 하나의 불완전한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손바닥으로 가린 것은 하늘이 아니고 자기 눈일 뿐입니다.
그래서 「헤아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24」 「삼가라」는 말은 「주의깊게」라는 말입니다. 눈을 가린 채 아무것도 없다고 우기지 말고 주의깊게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어지는 농부의 씨뿌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더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씨 뿌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농부는 수확하기 위해서 일년내내 쉴 틈 없이 일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이 파종은 하지만 그 씨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농부들은 씨를 만들지 않고 열매를 창조하지도 않습니다. 씨를 뿌릴 뿐이고 그것을 관리할 뿐이고 그러다 계절이 바뀌고 열매가 맺히면 그것을 거둘 뿐입니다. 빛은 지금도 빛나고 있고 진리는 지금도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풀섶에 머리를 처박은 토끼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인간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안타까운 호소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3」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