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숲 사이로 난 자전거 길을 달렸다. 나무들이 만든 터널을 지날 때 살랑거리는 잎새들은 판화를 찍어내듯 길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뭇잎이 만드는 그늘을 일본어로 木洩れ日(こもれび, 코모레비)라고 한다. 그러나 말뜻을 따져보면 코모레비의 주인공은 나뭇잎이 아니고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살이다. 木陰(こかげ,코카게)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나뭇잎을 주인공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뜨거운 여름 동안 햇살보다는 나뭇잎에게 정이 더 많이 들었나 보다.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코로나라는 시대 때문이었는지 정오라는 시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여름내 그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한 근거로 하나님이 오직 나를 위해 만드신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길옆으로는 나를 위해 펼쳐진 하늘과 바다가 있었다. 비 온 후의 매립지 바다는 펄 색을 하고 힘차게 출렁거렸고 고요한 날의 먼바다에는 무엇을 뿌렸는지 은색으로 반짝거렸다. 어느 날의 하늘은 단정하여 그 위에 시를 써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가는 길 위에 나를 위한 그늘이 있었고 나를 위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를 반기는 나무들은 춤추듯 가지와 잎새들을 흔들었다.

 

나뭇가지와 잎새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그물같이 이어져 있었지만, 똑같이 생긴 패턴은 하나도 없었다. 여백으로 비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겹쳐진 것들도 있고 크고 작은 것, 그리고 가만히 있는 것과 흔들리는 것의 운율이 제각기 달랐다. 가끔은 엷은 녹색을 띤 컬러 그림자도 있었다. 모든 그림자가 검다는 것은 오해다. 마음이 투명한 나의 잎새들은 햇살의 절반을 통과시키고 나머지 절반으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엷은 초록색의 그림자를 드리우곤 했다.

 

나는 여름 내내 브라운색 선글라스를 끼고 자전거 길을 달렸다. 브라운은 그린과는 보색이어서 브라운색 필터로 나뭇잎을 보면 초록색은 더 강렬한 채도로 빛난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다 지나도록 잎새가 아직도 연초록인 줄만 알았다. 선글라스를 벗고 보니 잎새는 어느새 늙어 있었다. 여름이 죽어가면서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겨우 매달려있는 잎새 사이로 하늘은 더 넓어졌지만, 탈색된 잎새들은 더는 나무에 붙어있지 못했다. 그날의 신록은 오늘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나의 잎새는 여름내 그림자를 비추던 그 길 아래로 떨어졌다. 나의 가는 길에서 나를 반기던 나의 잎새들은 이제 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그것이 미안했는지 말라버린 몸으로 그림자가 있던 자리로 떨어져 누웠다. 여백도 그대로이고 겹쳐져 있는 것들도 그대로였지만 서로 손을 잡고 살랑거리던 리듬은 없었다. 누운 채로 나를 환송했다. 나는 물기가 말라버린 나의 잎새들을 밟고 지나갔다. 「바삭…」거리는 가을 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마지막 이별의 말이 되었다.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지난여름 잎새를 한 번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푸르던 잎새는 흙이 되었다. 높아진 가을 하늘만 무심하게 푸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ByW4bOb0